[동아일보]
제2부 2월, 잉크를 만지면서 눈물을 흘려라!
제5장 나의 뇌파 나의 음악
어떤 인물을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100년 전, 임상심리학자 루돌프 슈뢰더는 아쉬운 미소와 함께 이런 명언을 남겼지만, 2049년 과학자들은 뇌파를 통해 인간의 머릿속을 상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2049년 2월 2일 화요일!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돌아누운 석범이 베개로 뒷머리를 덮어썼다. 보안청에 소꼬리를 넘기고 경위서를 작성한 후 아파트에 닿으니 이미 동이 터왔다.
눈을 감은 채 방금 꾼 악몽을 더듬었다.
소형 청소 로봇들이 일제히 그를 공격하는 꿈이다.
이 작은 아파트에도 열 마리가 넘는 청소 로봇이 산다. 석범은 아직 한 번도 그놈들과 마주친 적이 없다. 로봇들이 집주인의 형상과 냄새를 인지하여 미리 숨은 탓이다. 집이 텅 빌 때만 나와서 각자 맡은 영역을 청소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었다. 유리창 로봇은 개구리처럼 창에 붙어 유리만 닦았고 걸레 로봇은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면서 바닥만 훔쳤으며 천장 로봇은 도마뱀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긴 혀를 휘돌려 먼지를 삼켰다. 미세먼지와 태양열만으로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평생 한 지붕 아래 살아도 부딪힐 일이 없었다.
석범은 청소 로봇을 전 주인에게서 헐값에 구입했다.
만나지도 못할 녀석들한테 괜히 돈 쓸 까닭이 없지.
양서류와 파충류를 닮은 청소 로봇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구더기나 진드기를 닮았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청소 로봇은 방범 기능까지 겸했다. 낯선 침입자의 형상과 냄새를 맡으면 보안청과 집주인에게 연락하는 것과 동시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살상용 공격은 아니더라도 개구리가 등에 붙고 도마뱀이 콧잔등에 얹히고 거북이가 종아리에 침을 바르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불쾌하고 끔찍하다.
헌데 이 망할 놈들이 집주인도 몰라보고 은, 석, 범을 공격한 것이다.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눈을 크게 뜨며 또 입김을 내뿜어 자신이 바로 집주인 은석범이란 것을 증명했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나라고, 나 몰라? 이놈들아. 이 멍청이들아!”
걸레 로봇이 테너 음색으로 답했다.
“은석범의 형상 은석범의 냄새와 85퍼센트 동일함. 복제 가능성 51퍼센트. 공격하라!”
입력된 자료와 인간의 동일성이 9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청소 로봇은 방범 로봇으로 기능을 전환했다.
“85퍼센트라니? 난 100퍼센트 은석범이야. 다시 측정해 봐. 다시 해 보라고.”
“초조함 증가 위협도 증가. 은석범의 형상 은석범의 냄새와 81퍼센트 동일함. 복제 가능성 55퍼센트. 공격하라!”
뇌파모닝콜이 올 때까지, 석범은 아파트 여기저기에서 전투를 벌였다. 미디오스피어를 장식할 뉴스 문구가 떠올랐다.
청소 로봇 아파트를 부수다!
청소 로봇 전문 회사 은 2022년 시판되었다가 지금은 생산을 중단한 파충류/양서류 세트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집주인 은모 씨의 이상 행동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은모 씨는 신을 신고 거실을 돌아다녔을 뿐만 아니라 홈쿼터스 시스템에 합당한 명령어들을 제멋대로 뒤섞어 불렀으며, “내 꼬리는 어디 갔지? 내 꼬리는 어디 갔지?”라고 반복해서 물었다.
‘즐거운 하루! 당신은 이미 깨어나셨습니다.’
아무리 눈을 감고 자는 척해도 맑고 또렷한 알파파가 석범이 깨어났음을 드러낸다. 그래도 미적거리면서 버티면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과 목덜미에 이슬비처럼 분사될 것이다. 그래도 버티면 침대가 흔들릴 것이고, 그래도 그래도 졸음을 이기지 못한다면 달마동자의 찢어지는 독경 소리가 고막을 찔러댈 것이다.
석범은 손을 뻗어 헤드셋을 찾아 썼다. 2039년부터 벌써 10년 째 아침마다 되풀이하는 짓인데도, 헤드셋은, 영혼이란 녀석이 정말 있다면 그 놈을 꽉 끼워 가두는 듯하다. 먼저 프로그램 로고송이 가볍게 흘러나왔다.
‘리듬인브레인(Rhythm in Brain)! 당신의 오늘을 더 높게 당신의 내일을 더 아름답게! 리듬인브레인!’
그리고 석범의 뇌파가 만든 음악이 시작되었다.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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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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