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3, 2009

2009년에는 1초가 늘어난다?







[한겨레] 과학향기

저는 시계입니다. 그래요. 똑딱똑딱 하면서 움직이는 바로 그 시계죠. 매일 86,400초를 똑딱거리면 1,440분, 즉 24시간이 지나가고 24시간 365번 반복되면 1년이 지나갑니다. 365일 중간에 7일 단위의 주가 있고, 28~31일 사이의 월 단위도 있지만 총합은 365일, 31,536,000초로 같아요. 저는 아주 규칙적으로 똑.딱.똑.딱. 1초씩 세어 갑니다. 성실하고 절대 쉬지 않죠. 저처럼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을 정직한 존재는 없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제가 쉬지 않고 어떤 숫자도 건너뛰지 않고 똑 딱 똑 딱 1초 다음 2초 다음, 다음, 다음을 센다고 생각하시겠죠. 물론 전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초를 그런 식으로 일정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저에게도 예외라는 게 발생하곤 한답니다. 전 오늘 여러분께 제가 가진 비밀을 알려 드리려고 해요. 배신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가진 모든 비밀이 우리, 그러니까 시계와 인간 사이의 약속으로 이뤄졌다는 걸 말씀 드려요.

그 일은 1971년 12월 31일에 처음 시작되었어요. 저는 매년 마지막날 86,400초를 세고 한 해를 마무리 합니다. 하지만 그 날은 말하자면 86,401번째 초가 있었어요. 인간 과학자들이 초를 인위적으로 삽입한 것이죠. 이른바 ‘윤초(閏秒)’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972년 이후로 총 24회 윤초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지난 2008년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에서 2009년 1월 1일 0시로 넘어가는 그 순간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1초가 추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하기에 앞서 초의 개념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볼게요. 1초란 어떤 시간일까요? 너무 어렵나요? 역으로 생각해보죠. 하루 24시간은 지구의 자전시간이고 일 년 365일은 지구의 공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준입니다. 24시간에서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 이렇게는 익숙하죠. 그러니까 1초란 하루의 8만 6400분의 1입니다. 그렇지만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건, 1년이 365일이라는 건 정확할까요? 만약 24시간과 365일이 절대불변의 정확한 기준이 아니라면 1분, 1초라는 어떤 길이의 시간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거예요.

20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과학기술은 날로 발달했고, 지구의 자전에 대해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지구의 공전은 물론 자전 시간도 항상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과학자들은 더 정확한 기준을 가진 시간이 필요했어요. 보통사람들이라면 1초, 1분도 길게 느껴지지만, 우주선을 쏘아 보내는 과학자들에게는 1천분의 1초, 1만분의 1초도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죠.

1950년대 후반 하늘의 해와 달을 대신해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 새로운 초의 기준으로 제시되었어요. 그리고 1967년 세계의 시간 표준(세계시)으로 공인되었죠. 그 새로운 시간의 기준은 바로 세슘 원자의 운동 속도입니다. 세슘 원자는 기저 상태에서 초미세 준위 사이를 91억 9,263만 1,770분의 1초 간격으로 진자 운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세슘 원자가 91억 9,263만 1,770번 진자 운동을 하는 시간이 지구 상의 인간이 공인한 1초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원자시의 근간이 되는 원자초(atomic second)라고 부릅니다. 시간을 세밀한 단위로 나눌 때 사용하는 밀리 초, 마이크로 초, 피코 초, 팸토 초 같은 시간 단위는 모두 원자초를 근간으로 합니다.

문제는 이 원자시와 실제 시각 사이에 오차가 발생한다는 것이죠. 해서 1972년부터 인류는 전 세계에서 1초를 더하거나 빼는 보정행위, 즉 윤초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국제지구자전사업(IERS: International Earth Rotation Service)이라는 기관에서 윤초 시행에 관해 결정을 내립니다. 지구의 자전이 느려져 1초를 삽입하는 것을 ‘양의 윤초’라고 하고, 지구의 자전이 빨라져 1초를 삭제하는 것을 ‘음의 윤초’라고 합니다. 1972년부터 1999년까지는 밀물과 썰물을 일으키는 달의 조석력 때문에 지구의 자전이 느려져, 매년 윤초를 삽입했죠. 윤초를 시행하는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1월 1일과 7월 1일이 제1 우선 일이고, 4월 1일과 10월 1일이 제2 우선 일입니다. 해마다 1월 1일이나 7월 1일, 혹은 4월 1일이나 10월 1일 0시0분0초에 당신이 모르는 초가 더해지거나 당신이 아는 어떤 초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이니까, 당신이 한국에 살고 있다면 초가 더해지거나 빠지는 시간은 09시 0분 0초가 되겠지요.

1초가 쌓여서 1분이 되고, 분이 쌓여서 다시 시간이 되고 날짜가 되기 때문에 1초 단위의 오차는 뒤에 큰 차이를 낳게 됩니다. 보통 중국과 우리나라의 설날은 거의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은 사실 1시간의 시차가 있습니다. 딱 1시간일 뿐이죠. 하지만 그 1시간이 쌓이다 보면 중국이 하루 늦게 설날을 맞기도 합니다. 지난 1997년은 2월 8일 0시6분이 삭(朔)이어서 한국은 그 해 2월 8일이 설날이었어요. 그러나 중국 시각으로는 2월 7일 23시6분이므로 중국은 2월 7일이 설이었습니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1시간 때문에 1914년부터 2099년까지 한국과 중국의 음력 설날과 추석이 다른 해는 열다섯 번이나 됩니다. 길게 보면 정말 큰 차이가 생기죠?

고작 1초쯤, 더하거나 빼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답니다. 첨단 기술과학에서는 1초란 어마어마하게 큰 단위입니다. 통신, 항해, 항공, 국제 금융시장 등에서 큰 영향을 미쳐요. 1초를 기준으로 날짜의 경계선이 달라져 버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인터넷에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금융거래에서 1초 차이로 송금 일이 달라진다면? 결제일을 지키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겠죠. 1초, 1분, 1시간의 차이로 날의 경계가 달라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해보세요. 사람마다 다른 시간 개념을 기준으로 한다면 국가 공휴일이나 명절의 요일을 제 각각으로 생각해 큰 혼란이 올 수 있어요. 실제로 지난 2006년에 일부 휴대전화, 컴퓨터 등 전산장치의 달력이 그 해 설날을 1월 30일로 잘못 표기해서 기차표를 잘못 예매하는 사람이 생기는 등 혼란이 있었습니다. 실제 설날은 1월 29일이었죠.

사람들이 달력을 조정하는 건 물론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하루의 기준을 태양으로 삼을 것이냐 별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에 따라 하루의 길이는 달라집니다. 양력을 쓸 것이냐 음력을 쓸 것이냐에 따라 달의 길이도 모양도 달라지겠죠. 게다가 하루나 달, 1년은 정확하게 떨어지는 숫자가 아닙니다. 만일 지구의 공전 시간이 일정하다고 해도 1년은 365일이 아니라 365일 5시간 48분 45.2초 입니다. 정확히 365일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400년에 97일의 윤일을 두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4년에 한번씩 윤일이 있는 윤년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달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에서는 12달이 354.36일로 그레고리력보다 11일 가량 짧습니다. 그래서 대략 19년에 7번의 윤달이 생기지요.

이제 시간과 달력이란 것도 본래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걸 아셨을 거예요. 물론 저는 지금도 쉬지 않고 똑딱똑딱 움직이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멍하게 있는 동안에 언제 몇 초를 뚝딱 건너뛸지도 몰라요. 그러니 쫑긋 귀를 세우고 제가 하는 일을 지켜봐 주세요.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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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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