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고전, 감동 재현 가능할까
심심찮게 극장에서 과거 할리우드 영화들의 리메이크들을 만날 수 있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영화라는 매체가 시작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탓에 더 이상 획기적인 것을 찾아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확실한 돈 벌이를 추구하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할리우드 영화의 황금시대인 1950~60년대에 제작된 클래식, 특히 공상과학영화들은 군침이 절로 나는 목표물이다. 이야기 자체는 모두에게 검증된 유명한 텍스트이니 적당히 동시대성만 부여하면 될 테고, 적당한 스타 배우를 꽂고 천정부지로 발전한 특수효과 기술로 더욱 실감 나는 화면을 창조하기만 하면 된다. 적어도 57년 만에 리메이크된 <지구가 멈추는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의 제작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는 <매트릭스(The Matrix)>의 구원자 ‘네오’로 유명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를 연출했던 할리우드의 거장 감독 로버트 와이즈의 동명의 1951년작을 스크린에 되살린 작품이다. 공상과학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로버트 와이즈의 <지구가 멈추는 날>은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미국과 구소련 사이의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했다. 겉으로는 지구에서 인간을 끝장내려는 외계인의 침략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는 당시 전 인류를 파괴할 핵전쟁의 공포에서 탈피, 전 인류가 평화로 나아가자는 목소리를 분명히 낸다.
독특한 오컬트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The Exorcism of Emily Rose)>로 이름을 세계에 알린 스코트 데릭슨이 리메이크한 <지구가 멈추는 날>은 기본적으로 원작과 동일한 구성으로 흘러간다. 물론 달라진 점도 있다. 여권신장의 시대답게 여주인공 헬렌의 직업이 외계생물학자로 바뀌었고, 흑백의 조화를 이야기에 녹여내려고 흑인 소년을 그녀의 의붓아들로 설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고는 거의 모두가 원작의 충실한 복기다. 미확인 물체가 지구로 돌진하고, 미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저명한 우주 과학자들을 불러들여 대책을 마련코자 한다. 지구와 충돌 직전 갑자기 속도를 늦춘 미확인 물체는 천천히 뉴욕 센트럴 파크에 내려앉는다. 급기야 문이 열리고 클라투라는 이름의 외계인이 등장한다. 인간과 동일한 모습의 클라투는 미 국방장관에게 전 세계 지도자들과의 회담을 요청하지만, 이 요청은 일언지하에 거절된다.
똑같다. 하지만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 시대상을 적극 반영했던 원작의 메시지는 당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원작과 똑같은 내용으로 진행되는 <지구가 멈추는 날>의 리메이크는 57년 후 관객들에게는 지독히도 터무니없다. 미국의 카운터파트였던 구소련이 몰락하고 미국이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유일무이의 경찰 국가가 된 것은 비교적 오래전의 일이다. 확고부동한 원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냉전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창하는 영화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때깔 나는 특수효과가 있지 않냐고? 거대한 자이언트 야구경기장이 몇 초 안에 사라지는 장면이 인상적이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월등한 그림들을 <스타 워즈(Star Wars)>에서,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에서 그리고 가장 가깝게는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에서 목격했다. 진부한 이야기와 기대에 못 미치는 특수효과, 거기에 배우들의 안이한 연기까지, <지구가 멈추는 날>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나았을 역대 최강의 안이한 리메이크다.
태상준 영화칼럼니스트
[출처 : 이코노믹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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