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강찬수.강기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서 남극 세종기지 주변에 풀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남극권에는 지의류(地衣類· lichen)와 이끼류만 발견됐다. 지의류는 곰팡이와 조류(藻類)의 공생체로 기온이 낮거나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던 남극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이젠 꽃을 피우는 식물까지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이은주(45·생명과학부) 교수는 10일 “지난달 6~19일 남극 세종기지 주변에서 식물분포를 조사한 결과 벼과(科)에 속하는 식물인 남극좀새풀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종전에는 국지적으로 한두 개씩 보였으나 최근에는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세종기지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연구기지에 골프장이 들어설 날도 멀지 않았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이 교수는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세종기지 주변지역(약 16㎢)의 식물분포를 조사했다. 세종기지는 남극대륙에서 뻗어 나온 남극반도에 접하고 있는 킹조지 섬에 자리 잡고 있다. 남극은 지금 여름이다. 가로·세로 1m의 방형구(네모 틀)를 여러 곳에 설치해 남극좀새풀의 개체수를 조사한 결과 남극좀새풀은 ㎡당 평균 2.9개씩, 바위틈에서는 ㎡당 10개 이상 발견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남극개미자리라는 풀이 발견됐지만 개체수가 매우 적었다. 관찰된 풀의 99%는 남극좀새풀이었다. 이 풀의 ㎡당 무게는 최고 22.4g이었다. 이 교수는 “얼음이 녹은 뒤 드러난 척박한 토양의 10~20%는 이끼나 지의류가 융단처럼 덮고 있는데 이끼류가 갈라진 틈에서 남극좀새풀이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끼층의 갈라진 틈에는 수분과 유기물이 풍부하고 추위를 막아준다.
이에 따라 제일 먼저 지의류가 자라고, 그 뒤를 이어 이끼류가 퍼지고, 다시 남극좀새풀이 뒤를 잇는 '천이(遷移)'가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세종기지 주변의 낮 기온이 영상 5~6도까지 올라간다”며 “높은 기온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수분이 공급돼 식물 확산이 빨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연구팀은 지난달 남극대륙 전체의 기온이 1957년 이후 0.55도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인근 남미 대륙에서 발견되는 남극좀새풀보다는 크기가 작다. 남미에서는 길이가 30~40㎝이지만,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세종기지의 남극좀새풀은 줄기 길이가 10㎝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해안에서 육지 쪽으로 폭 20m, 길이 80m의 정밀 조사지역을 지정해 풀의 확산 과정을 매년 지속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이번에 조사된 개체 가운데 어린 게 많아 앞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과거 영국·일본 등이 국력이 강할 때 해외에 연구팀을 많이 보냈는데, 우리도 주인이 따로 없는 남극에서 열심히 연구한다면 연구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남극대륙의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전 세계 해수면이 57m나 올라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남극반도에서는 10개의 대형 빙붕(氷棚)이 떨어져 나갔다. 빙붕은 남극대륙과 이어져 바다에 떠 있는 두께 300~900m의 얼음덩어리를 말한다.
강찬수·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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