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국내 연구진이 세계에서 가장 선명한 ‘뇌지도’를 완성했다. 한국인의 뇌지도가 완성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가천의과대 뇌과학연구소 조장희(사진) 박사팀은 “0.3mm 정도의 미세혈관까지 볼 수 있는 새로운 뇌지도를 완성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작업에는 서울대, 아주대, 삼성의료원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다. 세계적 의학출판사인 ‘스프링거’는 최근 조 박사팀과 독점 계약해 이 뇌지도를 책으로 제작하고 있다. 550장 분량의 이 책은 올 하반기에 세계에서 동시 발간될 예정이다.》
기존 MRI보다 3배이상 선명
0.3㎜ 미세혈관도 손금보듯
○ 지구 자기장 35만 배 MRI로 뇌를 찍다
뇌지도는 뇌 사진 위에 피질, 혈관 등 각 부분의 위치를 정밀하게 표시한 그림이다. 낯선 곳을 찾아갈 때 지도를 참고하듯 뇌수술을 하거나 뇌질환 연구를 할 때 길라잡이가 된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뇌지도의 해상도가 낮아 뇌 구석구석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것. 가령 뇌 깊숙한 곳에 전극을 삽입한 뒤 전기자극을 줘 기능을 알아보려 해도 기존 뇌지도로는 전극을 어디에 꽂아야 할지 정확히 찾을 수 없었다.
가천의과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는 “새로운 뇌지도는 기존 지도에 비해 해상도가 최소 3배 이상 높아졌다”고 말했다.
뇌지도의 해상도를 확 끌어올린 일등공신은 7T(테슬라) 자기공명영상(MRI)장치다. 7T MRI는 지구 자기장의 35만 배쯤 되는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뇌 사진을 찍는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MRI는 이보다 약한 1.5T짜리다.
김 교수는 “1.5T MRI로는 눈에 띄지 않던 미세혈관이 7T MRI에서는 뚜렷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우주망원경의 해상도를 높일수록 보이지 않던 별이 관찰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뇌과학연구소가 자체 개발한 ‘헤드 안테나’도 한몫했다.
헤드 안테나는 둥근 헬멧 모양의 투명한 플라스틱에 수십 개의 코일이 붙어 있다. 뇌 사진을 찍을 때 환자가 헤드 안테나를 쓰면 코일이 MRI와 교신하면서 영상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 살아 있는 사람 찍으니 미세혈관이 생생
‘스프링거’ 같은 유명 출판사가 조 박사팀의 뇌지도에 눈독을 들인 이유는 해상도 때문만이 아니다. 연구팀의 뇌지도가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기반으로 제작됐다는 것도 출판사를 놀라게 했다.
현재 의학 교과서에 있는 뇌지도는 대부분 죽은 사람의 뇌를 찍은 사진이다. 간혹 살아 있는 뇌 사진을 찍더라도 해상도가 낮아 죽은 사람의 뇌를 잘라서 본 것만 못했다.
김 교수는 “죽은 뇌에서는 뇌기능에 직접 관여하는 미세혈관을 관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살아 있을 때는 있었던 부위가 죽은 뒤에는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연구팀은 자유롭게 뇌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은 사람의 뇌를 MRI로 촬영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서울대 의대 지제근 명예교수는 “한평생 봐온 뇌에서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부위를 새 뇌지도로 벌써 두세 군데 찾았다”며 “이 부위의 기능이 뭔지 당장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금까지 MRI를 찍을 때 뇌 단면을 자르는 각도가 제각각이었는데, 이번에 연구팀은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 제시했다. 연구팀의 뇌 지도책(New Brain Atlas)에 ‘새로운’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 “파킨슨 병 등 뇌질환 진단 새 장 열 것”
조 박사팀의 뇌지도가 완성되는 데는 꼬박 1년 반이 걸렸다. 한 연구원은 “뇌지도가 꿈에까지 나타나 괴롭힌다”고 투덜댈 정도로 연구팀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 교수는 장당 평균 48개나 되는 뇌 부위를 360장에 걸쳐 일일이 영어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6번 이상 철자가 틀리진 않았는지 검토했다. 그는 “전 세계 연구자가 볼 책이라 더욱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아주대 의대 정민석 교수는 죽은 사람의 뇌지도를 만들기 위해 영하 70도에서 꽁꽁 얼린 뇌를 0.1mm 두께로 잘라 사진을 찍었다. 뇌의 평균 길이가 20cm 정도이니 2000번 자르고 찍기를 반복한 셈이다. 이 뇌지도는 살아 있는 사람의 뇌지도와 비교할 수 있게 새 지도책에 나란히 실렸다.
김 교수는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처럼 퇴행성 뇌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새 뇌지도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그는 “살아 있는 한국인의 뇌를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한국인 뇌의 표준지도를 제시했다는 점도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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