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5, 2009

Cine Prism |과속스캔들







웃음에 올인한 과속스캔들

이쯤 되면 뒷북도 여간한 뒷북이 아닐 수 없다. 전국 관객 600만명을 돌파하고 <미녀는 괴로워>의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인 661만명을 넘기는 것도 철저히 시간 문제에 접어든 〈과속스캔들〉 이야기다. 사실, 이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 영화계 안팎에 화제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나마 우리에게 알려진 차태현을 빼면 사람들에게 어필할 만한 배우를 찾아볼 수 없다. 세련되고 근사한 작명과는 확실하게 거리가 있는 촌스럽기 짝이 없는 영화의 제목은 또 어떤가. 적어도 외양만으로 판단하건대 〈과속스캔들〉은 도대체 관객들을 유인할 구석이 단 한 개도 없는 그런 고만고만한 코미디영화로 보여졌다.

그런데, 엄청난 일이 이 영화에 일어났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기막힌 입소문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것. 그 결과 <과속스캔들>은 할리우드의 대표선수들이 자리잡고 있던 겨울 극장가를 확실히 평정하기에 이른다.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나 <지구가 멈추는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같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는 말할 것도 없고 <과속스캔들>은 슈퍼스타 조인성 주연의 한국영화 <쌍화점>도 가볍게 제쳤다.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이야기다.

사실 <과속스캔들>의 이야기 자체는 새롭지도 않고, 오히려 지나치게 전형적이기까지 하다. 왕년의 아이돌 스타로 지금은 인기 디스크 자키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현수(차태현 분)에게 어느 날 자신을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 정남(박보영 분)이 나타난다. 이것만 해도 기막힌데 정남은 기동(왕석현 분)이라는 꼬마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의 처지다. 엉겁결에 할아버지 신세가 되어버린 현수는 딸과 손자와 함께 전혀 원치 않던 가족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엉뚱하고 기막힌 설정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눈에 훤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사건에서 시작된 〈과속스캔들〉은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확실하게 관객들을 웃겨준다. 말이 되고 되지 않고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저 시침 뚝 떼고 이런 영화적인 이야기를 맘껏 화면에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기대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입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참 묘한 일이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에서 이야기의 전형성이 그리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전형성을 끝까지 효율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느냐가 최대의 문제일 뿐이다. 극 말미 억지로 감동 코드를 끌어와 웃음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망가진 여느 한국 코미디영화와는 달리 <과속스캔들>은 확실하게 웃음과 유머만을 추구한다.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미혼모 같은 심각한 문제에 대한 판단은 살짝 유보한 채 <과속스캔들>은 러닝타임 내내 가볍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코미디 장르의 최고 미덕이자 목표라고 한다면, <과속스캔들>은 이를 120% 충실하게 발휘하고 있다.

다분히 전형적인 이야기를 만회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련의 캐릭터들이다. 30대 키덜트(Kidult)를 대표하는 현수와 이들 앞에 나타난 엉뚱한 모자 정남과 기동의 좌충우돌은 <과속스캔들>에 확실하게 힘을 넣어준 고마운 존재들이다. 한국영화 시장이 끔찍한 불황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이때, <과속스캔들>은 이후 한국영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안긴다. 딴 생각 말고 기본기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 그것이 해답이다.

태상준 영화칼럼니스트

장르 - 코미디

상영시간 - 108분

개봉일 - 2008.12.3

감독 - 강현철

출연 - 차태현, 박보영, 왕석현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출처 : 이코노믹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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