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8, 2009

지상의 지옥..."하느님도 우릴 버렸다"





[오마이뉴스 윤여문 기자]

"호주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A state in mourning)"고 보도한 9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 인터넷 판
ⓒ 시드니모닝헤럴드




"호주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A state in mourning)" -<시드니모닝헤럴드>



"지상의 지옥(Hell on earth)" -<데일리텔레그래프>



"호주 최악의 산불(Nation's worst bushfire) -<디 오스트레일리안>



9일 아침, 호주의 3대 일간지 인터넷 판이 뽑은 헤드라인이다. 이틀 남짓,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330만 ha가 온통 잿빛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산불이 앗아간 생명만 9일 오전 7시30분 현재 108명이다. 중상자의 숫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중상자가 워낙 많아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9일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 역사상 최악을 자연재난으로 기록된 '검은 금요일(1939년, 70명 사망)'이나 '재의 수요일(1983년, 75명 사망)'보다 더 큰 재앙이 발생했다"며 "전쟁 기간 말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부상당한 예는 없다"고 보도했다.



"호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라고 보도한 '디 오스트레일리안' 인터넷 판
ⓒ 디 오스트레일리안




섭씨 49도의 폭염 + 시속 100km의 강풍



사망자는 모두 호주 남단에 위치한 빅토리아 주에서 발생했다. 시드니가 주도(州都)인 뉴사우스웨일즈 주(이하 NSW주)에서도 50군데 넘게 산불이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4계절 내내 이어지는 녹색 풍경 때문에 '가든 스테이트 (Garden State)'라고도 불리는 빅토리아 주에서 왜 이런 재앙이 발생했을까. 우선 최악의 기상조건이 불러온 자연재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주 전체가 섭씨 45도가 넘는 폭염에 들끓었고,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시속 100km의 강풍이 불길을 이리저리 몰고 다녔다. 통제가 불가능한 '요원의 불길(?原之火)'이었다.



"가장 뜨거운 상태로 고정시킨 헤어드라이어 앞에 하루 종일 서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어제 킹 레이크(King lake) 지역이 딱 그런 상태였습니다. 섭씨 45도가 넘는 폭염, 시속 100km도 넘는 강풍이 몰아치는 악몽의 하루였습니다."



8일 아침, <채널9> '투데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산불 피해자의 증언이다. 그가 증언하는 동안, TV화면 뒤쪽에 비친 유칼립투스 나무에는 아직도 불길이 남아있었다. 빅토리아 주 아바론 지역은 최고기온 49도를 기록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지역.
ⓒ 디 오스트레일리안




학교·교회·우체국·경찰서·소방서 모두 불탄 위틀씨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위틀씨(Whittlesea) 지역은 지상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변했다. TV화면으로 생중계 되는 그 지역의 모든 공공건물과 주택은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불길이 지나간 다음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한 주민은 불타버린 성경책 조각을 들고 "하느님도 우리를 버렸다"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그의 뒤쪽에는 불타버린 교회의 잔해가 앙상할 뿐이었다.



공중에서 촬영한 TV카메라가 비춰주는 학교, 교회, 우체국, 경찰서, 소방서 등도 모두 불타버렸다. 다행히 커뮤니티센터(마을회관)만 피해를 입지 않아 재해를 당한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9일 아침, <채널7> '선라이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메리 라리오스 위틀씨 시장은 "분노하는 자연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황무지에서 무엇부터 조치해야 할지 앞날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한편 위틀씨 지역에 살았던 <채널9>의 뉴스진행자 브라이언 네일라 부부도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9일 아침,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투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채널9> 동료들은 그의 사망소식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했다.





산불방제본부(CFA)에서 이틀을 보낸 캐빈 러드 총리



멜버른 소재 산불방제본부(Country Fire Authority, CFA)에서 이틀 동안 머물고 있는 케빈 러드 총리는 "이번 재난은 빅토리아 주에서 발생했지만 호주 전체의 재난이다. 국가와 국민은 피해를 당한 주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채널7> '선라이스'에 출연한 러드 총리는 CFA 건물 앞에서 "이미 군인들이 장비와 함께 현장에 투입된 상태이고, 그들은 앞으로 황무지가 된 커뮤니티 재건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드 총리는 이어서 "너무 많은 숫자의 선량한 시민들이 죽음을 당했다"면서 "지금 호주는 깊은 슬픔에 잠겼지만, 일단 울음을 멈추고 장례를 준비하면서 유족들을 보살피는 일에 힘을 모아야한다"고 말했다.



러드 총리는 "지금은 무엇보다 피해를 당한 주민들에게 산불재해보상금을 빨리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정부에서도 사회보장성(CES)을 활용하여 보상금을 단시일 내에 전달하겠지만, 국민들의 적극적인 구호참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망연자실한 호주 시민들.
ⓒ 시드니모닝헤럴드




일부는 방화로 추정되어 충격 더 커져



한편, 호주 역사상 최악의 산불재난으로 기록될 이번 사태가 전부 자연재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호주 국민들의 충격이 더 커지고 있다. 적지 않은 숫자의 산불이 방화범(arsonist)에 의해서 발화됐다는 것.



9일 아침, 호주국영 abc-TV '블랙퍼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크리스틴 닉슨 빅토리아 주 경찰청장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경찰당국은 끝까지 범인을 추적하여 그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서 "지금도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방화범이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설령 가족일지라도 커뮤니티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신고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NSW주 고스포드 지역의 31세 남성과 블루마운틴 지역의 15세 소년이 방화를 저지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받고 있다. 호주에서 방화범은 15년 이상 25년까지 언도된다.



호주 북쪽 퀸즐랜드 주에서는 최악의 물난리 피해



호주는 대륙이다. 대륙 전체를 한 나라가 차지한 유일한 나라다. 그래서인지 한 쪽에서는 최악의 산불이 일어났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최악의 물난리를 겪고 있다.



"열흘 이상 계속되던 폭우가 이틀 정도 잦아들더니, 어제부터 거센 빗줄기가 다시 몰아치고 있습니다. 오늘이 최악의 사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온통 물바다여서 헬기에서 구호품을 투하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역시 8일 아침, 퀸즐랜드 주 잉햄(Ingham) 지역에서 <채널7> '선라이스' 프로그램 리포터가 전한 물난리 소식이다. 우산을 받치고 있는 리포터의 뒤쪽에는 여전히 거센 빗줄기가 뿌리고 있었다.



2월 6일 오전, 호주국영 abc-TV '블랙퍼스트'에 출연한 잉햄 지역 시장은 "지난 2주 동안 태풍이 2개나 지나갔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폭우가 계속 쏟아지고 있다"면서 "잉햄 지역은 이미 '자연 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상태로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사상 최악의 홍수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퀸즐랜드 주에서는 5세 소년이 악어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8일자 <쿠리어메일>는 "케이프 트리블레이션에서 5세 소년이 악어에게 물려가는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서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실종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소년의 형(7세)이 현장에서 3m 크기의 악어를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악어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5세 소년을 보도한 '쿠리어 메일'
ⓒ 쿠리어메일




현재 소년이 실종된 인근 지역을 수색하고 있는 퀸즐랜드 경찰은 "아주 광범한 지역이 침수상태여서 악어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퀸즐랜드 지역을 여행하는 관광객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호주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상파 TV방송사들은 산불소식과 홍수소식을 교대로 전하고 있다. 그것도 양쪽 모두 최악의 사태여서 호주가 아주 특이한 자연재난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시드니에 소재하는 호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토탈환경센터(Total Environment Center)' 제프 엔젤 소장은 "호주의 극단적인 기상현상은 인간이 불러온 재앙"이라면서 "아직도 자연보호를 외면하는 사람들에 내리는 경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9일 오전부터 기온이 내려가고 조만간 산불지역에 비가 내릴 것이라는 뉴스가 있지만, 빅토리아 주 10여 곳과 NSW주 50여 곳의 산불은 계속 번지는 중이다.




[최근 주요기사]


☞ [르포] 목마른 태백"한달내 비 안오면 못 산다"


☞ 원혜영 "입법전쟁은 휴전 아닌 종전된 것"


☞ 권영국 변호사 "검찰은 이미 경찰 처벌 포기"


☞ "지도 업데이트? 계좌번호부터 내놓으시지"


☞ 왜 아랍어능력시험은 요구하지 않는 거야?


☞ [엄지] 우리아이가 '쥐' 잡기에 나섰습니다


☞ [E노트] 국민들도 '무전기' 꺼버릴까? 김석기처럼...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 오마이뉴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