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2, 2008

[리뷰] '지구가 멈추는 날'-할 말이 없었던 SF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SF가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미래 사회라는 가상의 시공간을 설정하고나서 이 장르의 작품들이 거론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들이다. 1951년작인 ‘지구 최후의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이 직설적인 어조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냉전 시대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공멸 위기 앞에서의 평화에 대한 호소였다. 당대의 맥락에서 그 메시지와 화술은 충분히 절박했다. (폭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강조가 지나쳐, 이 영화는 파시즘적인 해결방법을 결말 부분에서 노골적 대사를 통해 제시하기까지 했다.)















스콧 데릭슨 감독의 ‘지구가 멈추는 날’(12월24일 개봉)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제는 1951년작과 동일하지만, 이번 신작의 국내 개봉 제목은 원제의 뜻에 가깝게 바꾸었다.) SF 역사에서 이미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수십년 전 영화를 시대적 맥락이 완전히 바뀐 2008년에 다시 만들면서, 제작진은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미국 정부는 미확인 물체가 지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자 우주 생물학자인 헬렌(제니퍼 코넬리)을 비롯한 과학자들을 서둘러 불러 모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 방법도 마련하기 전에 충돌 직전까지 다가온 미확인 구체(球體)는 뉴욕 상공에서 갑자기 멈춰선 후 센트럴 파크에 착륙한다. 거대한 구체로부터 인간 모습을 한 외계인 클라투(키아누 리브스)가 걸어나오자 대기 중이던 군인이 엉겁결에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힌다. 부상에서 회복한 클라투는 지구의 운명에 대해서 말할 것이 있다면서 각국 정상들과의 회담을 요청한다.



이 영화의 제작진은 적잖은 부분에서 1951년작을 따랐다. 남녀 주인공인 클라투와 헬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고, 원작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외계어 “클라투 바라다 닉토”도 등장시켰다. 클라투와 함께 와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로봇 고트의 외형도 기본적으로 같고, 인류와 외계인이 처음 만날 때 벌어지는 일도 동일하다. 심지어 첨단 외계 문명의 지식을 가진 클라투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의 잘못된 수식을 가볍게 고쳐주는 장면까지 그대로다.



반면에 새롭게 바꾸어낸 부분도 많다. 원작과 달리, 헬렌의 아이를 의붓아들로 바꾼 뒤 아예 인종이 다른 흑인으로 설정했고, 그 모자(母子)의 갈등 극복 모티브를 비중 있게 녹여넣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볼거리를 늘렸다는 점일 것이다. 원래 2.5미터 밖에 되지 않는 로봇 고트의 크기를 몇 배나 키웠고,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어 삽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나노봇의 스펙터클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메시지는 인류의 파괴적인 본성에 대한 경계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고로 바꾸었다. 아울러 종교적인 색채는 훨씬 더 강화됐다. 원작의 클라투가 어느 정도 예수처럼 보인다면, 리메이크작의 클라투는 영락없이 인간의 패악을 보다못해 멸망시키려고 하는 구약성경의 신(神)과도 같다.



하지만 ‘지구가 멈추는 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투박하고, 공허하게 계몽적이다. 최초의 사건 이후 스토리가 제자리 걸음을 하며 같은 자리를 맴도는 동안, “인간은 이성적인 종족이 아니야. 파괴적이지. 인류는 절대 안 변해”라거나 “문제는 인간이야. 인간은 변하려는 의지가 없어” 따위의 대사들이 밑도 끝도 없이 감상적으로 반복된다.



시대적인 한계를 감안한다고 해도 조악했던 원작의 시각효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특수효과이긴 하지만, 겨울 성수기 극장가를 이끌어 갈 21세기의 블록버스터로서는 볼거리도 빈약하다. 이 영화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스펙터클은 상상력과 표현력 모두에서 한참이나 모자라다.



원작에서 클라투 역으로 영국의 연극 배우인 마이클 레니를 선택했던 것은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라야 관객이 외계인으로 더 잘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가 멈추는 날’에서 그 역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는 대스타의 후광 때문에 내내 이야기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돈다.



원작은 걸작까진 아니라 할지라도, 당대의 상황에서 무척이나 신선한 기획이었고, 하려는 이야기를 힘있게 할 줄 아는 영화였다. 그러나 57년만에 다시 만들어진 ‘지구가 멈추는 날’은 애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도돌이표의 주술에 걸린 것처럼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는 인류의 폭력적 본성이나 환경 문제에 대한 발언들은 바뀐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저 말을 좀 바꾸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관성적으로 구겨서 넣은 핑계일 뿐이다. 이쯤 되면, SF의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이동진 (영화전문기자, <br /><br /><br /><br />이동진닷컴 대표) / '필름 속을 걷다', '이동진의 시네마레터'등 출간. KBS FM <유희열의 라디오 <br /><br /><br /><br />천국> '이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코너, 메가TV, '메가시네마',한국영상자료원 '영화평론가 이<br /><br /><br /><br />동진과 함께 보는 다시보기' 등 진행. / 이동진 기사(lifeisntcool@naver.com)<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이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코너, 메가TV, '메가시네마',한국영상자료원 '영화평론가 이 동진과 함께 보는 다시보기' 등 진행. / 이동진 기사(lifeisntcool@naver.com)" src="http://imgnews.naver.com/image/news/2007/leedongjin/img_djlee_0730.gif" width=567 useMap=#go_url> lifeisntcool@naver.com<br /><br /><br /><br />이동진블로그'언제나영화처럼'



 






[출처 : 이동진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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