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해석] 17일 오후 전남 순천시 도사동 하수종말처리장 부근. 동천 하류 안에서 중장비가 쿵쿵거리며 하천 바닥에 철제 파일을 박고 있었다. 물 안 청둥오리 떼는 계속 노닐고 있었지만 노랑부리저어새들은 소음이 싫다는 듯 날아가버렸다. 노랑부리저어새는 천연기념물 205호며, 환경 지정 멸종위기 1급 야생 조류다. 해룡 쪽에서는 콘크리트로 교각 하부 구조를 만드느라 장비와 인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반대 편에서는 논·갈대밭을 밀고 지반을 다지고 있었다. K건설 현장소장 C씨는 “동쪽은 교량을, 서쪽은 둑을 각각 약 10m 높이로 설치한 다음 그 위에 고속도로를 깔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태관광(에코 투어, Eco-tour) 명소로 떠오른 순천만 주변에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어 논란이다. 조류 생태 파괴와 자연경관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본지 9월 23일자 1, 3면>
한국도로공사는 2004년 목포~광양 고속도로 개설 사업에 나서 2011년 말 완공 목표로 진행 중이다. 문제가 되는 곳은 2006년 말 착공한 제11공구(길이 5.67㎞)로, 순천만 입구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동천을 중심으로 동쪽 1.5㎞ 구간에는 고공 교량을 설치하고, 서쪽 0.9㎞ 구간에는 흙을 높게 쌓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의 설계대로 완공될 경우 관광객들은 순천만을 들어서기 전에 전신주보다 높은 흙둑과 콘크리트 교량이 무려 2.4㎞나 뻗어있는 것을 만나게 된다. 고속도로 노선은 갯벌습지보호구역에서 북쪽으로 1.7㎞ 떨어져 있지만 생태계보존지구 안쪽이다. 동천과 옛 물길이 지나고 그 주변에는 갈대 숲이 우거졌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들판이다.
◆선형 변경 논란=순천시는 2004년 5월 현재의 고속도로 노선에 대해 동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도로공사는 2006년 말 공사를 시작했다. 순천시는 뒤늦게 문제점을 깨닫고 노선을 하수종말처리장 북쪽으로 더 후퇴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덕림 순천시 관광진흥과장은 “노선 협의 당시에는 순천만이 현재처럼 주목받지 않았고, 우리도 그 가치를 과소평가했다”며 “고속도로의 높은 흙 둑 및 교량이 생태를 단절시키고, 고속도로 주행 차량들의 소음과 불빛이 철새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선 변경에 대해 도로공사는 편입 부지를 95% 이상 매입하고 공사가 30%나 이뤄진 상황이어서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해양부 도로정책과 한수원씨는 “설계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힘들다”며 “부분적으로 보완해 부작용을 줄이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노선 변경이 안 될 경우 성토 구간을 교량 공법으로 바꾸고, 소음과 미관을 고려해 조형미를 갖춰 튜브형 방음벽을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 750억원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도로공사는 예상한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시는 추가 공사비를 댈 재정능력이 부족하다”며 “국가 차원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순천=이해석 기자
◆순천만= 순천시 대대동과 해룡·별량면 일대 36.58㎢(습지보호지역 28㎢).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를 비롯해 황새·큰고니·참매 등 220여 종에 이르는 조류가 서식한다. 올해 250만 명의 탐방객이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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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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