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 김인구]
믿었던 할리우드 스타 키애누 리브스가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서양인이지만 동양인의 생김새와 정서가 보이고, '매트릭스'같은 판타지 영화에서 어딘가 철학적인 수퍼 히어로를 연기해서 유독 친근감이 느껴졌던 배우인데요.
이번에 블록버스터 '지구가 멈추는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의 주인공을 했다고 해서 관심있게 봤더니, "이거 영 아니올시다" 이네요. 웬만하면 대놓고 "아니다"고 못 하는데, 이번엔 할 말 꼭 해야겠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광고와 호평만 보고 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요.
'지구가 멈추는 날'은 1951년 히트작 '지구 최후의 날'(영어명은 같습니다)을 리메이크 한 작품입니다. 원작의 성공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진화시키고,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CG)을 첨가한 할리우드의 야심작입니다.
여기서 키애누 리브스는 냉철한 외계인 클라투로 나옵니다. 인류와의 대화를 시도하다가 총상을 입은 후, 인간의 모습으로 부활해 인류를 심판하는 초능력 외계인입니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되살리며,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스피어를 조종하는 걸로 봐서는 '전지전능'이란 말이 딱 어울립니다. 굳이 설명 안 해도 "아! '그 분'"이란걸 알게 됩니다.
그는 외계인의 갑작스런 출현에 무질서와 혼돈에 빠진 인류가 "지구에 온 이유가 뭐냐"고 묻자, "지구가 죽으면 인간들도 죽지만 인간이 죽으면 지구는 살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겁을 줍니다. 즉, "너희들이 너무 환경을 파괴해서 내가 직접 해결하러 왔다"는 말입니다. 앞서 대대로 영화 속에서 지구를 침략했던 외계인의 이유치곤 참 고상합니다.
그리고는 같이 온 거대로봇 고트(철인 28호처럼 생겼습니다)가 레이저를 쏘면서 전투기와 전차를 가볍게 제압하고, 강철 모기처럼 생긴 나노봇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먼지로 갈아 엎어버립니다. 혹시 예고편 보셨나요? 질주하는 대형트럭이 먼지같은 회색 구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야구장이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거요.
여하튼 이처럼 인류가 멸망할 절체절명의 순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데, 인류에게 희망이라곤 오로지 클라투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헬렌 박사(제니퍼 코넬리)의 고군분투 뿐이라는 설정도 웃기네요. 믿음과 정성으로 이 전지전능한 외계인에게 "제발 멈춰달라"고 호소하는 거죠. 그것도 아주 간곡하게.
그런데 이게 먹힙니다. 처음엔 냉철함을 지나 냉혹해 보이던 클라투가 슬슬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인류의 선한 면을 발견하고 거기에 탄복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결말은 뻔한 거죠. 굳이 설명 안해도 미뤄 짐작 가능할 겁니다.
지금껏 누구보다 치밀한 시나리오를 골랐던 키애누 리브스의 이번 선택에 실망했습니다. 뭔가 미스터리를 끌고 가려했으나 극 초반에 그 저의가 훤히 드러나는 구조가 못마땅합니다. 고트, 나노봇 등 외계인 캐릭터들도 참 뜬금 없습니다. 그렇게 엄청날 것 같던 외계인들이 한 순간에 스러지는 모양도 허무합니다.
투자·배급사인 20세기 폭스에 따르면, 이 작품은 지난 12일 미국에서 개봉해서 첫 주 약 3000만달러의 흥행수입으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1999년 '매트릭스'의 흥행 영광을 이을 기세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키애누 리브스의 티켓파워였죠.
그러나 둘째 주 성적은 1000만달러 흥행수입에 박스오피스 4위로 급락했습니다. 보고 나서는 저처럼 실망스러웠던 관객이 많았나 봅니다. '매트릭스'는 개봉 후 7주간 박스오피스 3위권을 지켰으니 비교나 될 수 있을까요? 키애누 리브스씨! 다음 작품은 제발 부탁합니다.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
사진제공=20세기 폭스 코리아
[연말특집] 아듀 2008! 한 해동안 웃고 울게 만들었던 '올해의 뉴스'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 저작권자 ⓒJES,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출처 : 일간스포츠]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