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9, 2009

[‘신자원 부국’ 꿈꾸는 도시 광산 프로젝트]자원전쟁 대안 … 폐가전서 ‘보물 ’ 캔다











깊은 산속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서 보물을 캐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폐가전제품에서 값비싼 귀금속과 희유금속(稀有金屬)을 뽑아내는 ‘도시 광산(urban mining) 비즈니스’다. 원자재 값 상승과 친환경 바람을 타고 국내에서도 관련 업체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폐기물 속 희귀 자원만 제대로 재활용해도 한국은 웬만한 자원 부국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덕성리. 논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녹음이 우거진 산 중턱에 ‘수도권리사이클링센터’라고 표시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과 수도권, 강원 지역에서 발생한 폐가전제품들이 소중한 자원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곳이다. 수도권 센터는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가 운영하는 전국 5개 리사이클링센터 가운데 충청권 센터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1650㎡(옛 500평)에 달하는 넓은 야적장에 여기저기 깨지고 찌그러진 냉장고와 세탁기가 10여m 높이로 빼곡히 쌓여 있다. 그 사이로 지게차가 오고가며 폐가전제품이 수십 개씩 실린 팰릿을 들어 부지런히 공장 안으로 실어 나른다. 매년 2만1000톤에 달하는 폐기물이 이 센터를 거쳐 간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 대형 가전제품이 주요 품목이다.

휴대전화는 ‘고순도 초우량’ 광산

공장 안으로 옮겨진 폐가전은 먼저 전처리 과정을 거친다. 사람이 달라붙어 직접 손으로 떼낼 수 있는 것은 모두 분리해 내는 것이다. 10여 명의 인부가 저마다 드릴과 망치를 들고 세탁기 뚜껑에서부터 조작 패널, 연결 호스까지 순식간에 뜯어낸다. 이원영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 과장은 “전에는 제품마다 나사 규격이 달라 드라이버가 여러 개 필요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제조사들이 재활용을 고려한 친환경 설계를 도입해 공구 하나로 어떤 회사 제품이든 분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처리 과정을 통해 전체 공정의 60~70%가 완료된다.

다음 공정은 자동화 공정이다. 전처리 작업을 끝낸 폐가전은 리프트에 실려 자동화 설비에 투입된다. 폐기물을 잘게 부수고 물질별로 선별하는 작업이 원격 조작을 통해 전자동으로 이뤄지는 고가의 첨단 설비다. 이 과정에서 냉장고 냉매로 사용되는 오염물질 염화불화탄소(CFC)도 안전하게 회수 처리된다.

리사이클링 과정을 거치고 나면 폐가전은 최종적으로 고철과 구리, 알루미늄, 플라스틱, 우레탄, 인쇄회로기판(PCB) 등으로 분해돼 회수된다. 한국폐기물학회 연구에 따르면 매년 국내에서 배출되는 4대 가전제품(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280만 대를 재활용하면 철 7만2000톤, 플라스틱 3만9000톤, 알루미늄 2000톤, 구리 1300톤, PCB 0.5톤의 유가 자원을 추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수도권리사이클링센터에서 처리하는 가전제품 가운데 가장 돈이 되는 것은 에어컨이다. 에어컨 1대를 재활용하면 8만7237원의 이익이 남는다. 에어컨 자체가 구리와 알루미늄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국제 원자재 값이 고점을 찍은 지난해 상반기에는 대당 이익이 20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반면 세탁기는 대당 2만6147원, TV는 5129원이 남는다.

최근 도시 광산 붐과 관련해 특히 주목받는 것은 휴대전화, 퍼스널컴퓨터(PC) 등 정보기술(IT) 제품들이다. 간단히 말해 휴대전화는 고가 귀금속과 희유금속이 집적돼 있는 고순도 초우량 광산에 해당한다. 휴대전화 한 대에서 금 0.04g, 은 0.2g, 팔라듐 0.03g, 로듐 0.002g, 구리 14g, 코발트 27.4g을 뽑아낼 수 있다. 쉽게 상상할 수 없지만 금의 경우 휴대전화 1만 대(약 1톤)를 모으면 3.75g짜리 돌 반지를 100개도 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PC도 주기판에 금과 은, 구리 등 귀금속이 다량 함유돼 있다. PC 중앙처리장치(CPU)에는 금 0.05~0.2g이 들어 있다. 이 정도면 경제성에서 웬만한 금광을 훨씬 앞지른다. 금광석 1톤을 채굴하면 보통 금 5g가량을 얻을 수 있는데 휴대전화 1톤에는 400g, PC 1톤에는 52g이 들어 있다.

수도권리사이클링센터는 폐가전제품의 중간 기착지라고 할 수 있다. 분해 작업을 통해 회수된 유가 자원은 30여 개 전문 업체로 보내져 최종 처리된다. 협회가 회수한 휴대전화도 전문 재활용 업체로 매각된다. 유인성 수도권리사이클링센터 대표는 “PCB의 경우 센터에서 나오는 물량으로는 경제성이 나오지 않아 전문 업체로 보내고 있다”며 “이들은 여러 곳에서 PCB를 받아 금 은 구리 등을 추출해 낸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도시 광산 비즈니스는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하지만 당장 단기적 이익만 노리고 뛰어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도시 광산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는 환경적 관심이다. 폐기물 재활용 기술은 친환경적인 자원 순환형 경제를 만드는데 필수적이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 성장 전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지난 수년간 국제 원자재 값이 크게 올라 자원 재활용 사업의 채산성이 대폭 개선된 것도 ‘도시 광산 붐’에 한몫하고 있다.

일본 도시 광산 금매장량 남아공 추월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도시 광산이 미래의 자원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자제품의 기능이 갈수록 첨단화되면서 세계적으로 희유금속(Rare Metal) 수요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희유금속은 지각 내에 존재량이 적거나 특정 지역에 편재돼 있어 추출이 어려운 금속광물 자원을 가리킨다. 일본은 IT,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의 핵심 소재로 쓰이는 리튬과 인듐 등 31종, 미국은 33종, 한국은 35종의 광물을 희유금속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소량을 첨가해 소재의 기능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핵심 물질로 산업 고도화와 함께 그 쓰임새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문제는 희소성으로 인한 수급 불안 가능성이다. 또 다른 희귀 자원인 희토류(Rare earth element) 매장량의 98%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수출 촉진에서 국외 유출 방지로 정책을 선회한 지 오래다. 전문가들은 자원 민족주의 등으로 수급 불안이 커지면 최악의 경우 한줌의 금속 때문에 국내 IT 산업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도시 광산 개발에 가장 앞서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도시 광산’이라는 용어 자체도 198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것이다. 지난해 일본 물질재료연구소는 도시 광산과 관련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에 축적된 도시 광산 규모를 구체적인 수치로 계산해낸 것이다. 이 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도시 광산의 금 매장량은 6800톤에 달한다. 이는 세계 금 매장량의 16%에 해당하는 규모다. 도시 광산을 포함하면 일본은 세계 최대 금 자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6000톤)을 제치고 금 매장량 1위 국가가 된다. 마찬가지로 은(세계 매장량의 23%)과 인듐(세계 매장량의 61%)도 세계 1위로 올라선다.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대표적인 도시 광산 기업인 요코하마금속은 비상장 중견 기업이지만 환경문제가 본격 대두되던 1990년대 후반 폐PC에서 귀금속을 추출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일본에서 최초로 휴대전화에서 금을 뽑아내 이를 사업화한 기업으로 유명하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와홀딩스도 재활용 사업에 적극적이다. IT 제품 PCB 등을 파쇄, 분해한 다음 이를 제련해 귀금속과 희유금속 등 18종의 금속을 회수하는 선두 기업이다.

도시 광산 비즈니스는 국내에서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해부터 희귀금속을 추출하고 순도를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폐가전 수거 체계를 마련하고 관련 통계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도시 광산 프로젝트’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도시 광산을 키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폐기물 회수 체계 구축과 추출 기술 확보다. 도시 광산에서 ‘금맥’을 캐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폐가전·전자제품을 모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120g짜리 휴대전화에 금 6.8mg이 있다면 17톤의 폐기물을 처리해야 금 1kg을 회수할 수 있다. 일본 물질재료연구소가 계산한 도시 광산 규모도 일본 내에 축적된 총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전국에 산재된 폐기물을 모두 취합해 처리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회수 체계 구축이 급선무

현재 국내 가전 제조사와 수입사는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를 만들어 폐가전을 회수해 재활용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생산자재활용책임제(EPR) 도입으로 가전 업체들은 출고량의 일정 비율만큼 의무적으로 폐가전을 재활용해야 한다.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의 위탁을 받아 실제 재활용 활동을 펴고 있는 곳이 바로 전국 5개 리사이클링센터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 대형 가전제품의 경우 가전사 유통망을 통해 상당수가 회수돼 재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폐기물 발생량, 재활용률 등에 대해서는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주요 금속의 추출 기술도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금 은 동 정도만 재활용이 활발하고 액정표시장치(LCD) 소재인 인듐이 최근에야 재처리되기 시작한 정도다. 관련 업체들이 영세해 고난도 재처리 기술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도시 광산으로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개별 금속뿐만 아니라 다양한 광물을 한꺼번에 제련해 뽑아내는 복합 추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도시 광산의 성장성에 주목하는 기업들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LS니꼬동제련은 전기전자 부품 수거 및 재활용 전문 업체인 리사이텍코리아를 최근 인수했다. 그동안 LS니꼬동제련은 이 업체가 PCB 등 전자 부품을 분쇄, 납품하면 이를 이용해 유가 금속을 추출해 왔다. 이에 앞서 LS니꼬동제련은 지난해 말 또 다른 전기전자 제품 재활용 업체인 휘닉스엠앤엠(현 토리컴)도 인수한 바 있다. LS니꼬동제련은 잇따른 인수를 통해 가전제품 수거에서부터 분쇄, 제련까지 전 공정을 수직 계열화했다. 배관파이프 업체 애강은 지난해 국내 자원 재생 1위 기업인 리메텍을 인수·합병(M&A;)해 아예 상호를 애강리메텍으로 바꿔 달았다.

도시 광산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선택한 LS니꼬동제련 관계자는 “광산에서 귀금속을 캐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며 “이제는 도시 광물 자원 시대”라고 말했다.

인터뷰│송효택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 전략홍보팀장

‘통신사·유통사도 재활용 의무 부담해야’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는 국내 가전사와 가전 수입사가 함께 참여해 2003년 설립됐다. 생산자재활용책임제(EPR) 시행에 따른 재활용 시설을 공동 구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07년 전국 5개 리사이클링센터를 통해 10만6000톤의 폐가전제품을 재활용 처리했다. 협회는 수도권리사이클링센터가 있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있다.

폐가전은 어떻게 회수되나.

폐가전이 처리되는 경로는 크게 3가지다. 우선 가전사들이 신제품을 팔면서 헌 제품을 수거해 오는 경우다. 전체 62%가량이 이렇게 회수된다. 두 번째는 가정에서 쓰레기 종량제 스티커를 붙여 배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자체가 처리하는 게 30%가량 된다. 마지막은 재사용업자들에게 팔려나가는 경우다. 판매 대리점을 통해 상당수가 회수되고 지자체 물량도 협약을 맺어 대부분 센터로 모아진다.

주로 어떤 제품을 처리하나.

세탁기 내장고 등 대형 가전제품 위주로 운영한다. 이런 쪽은 대형 설비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민간 업자가 하기에는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협회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휴대전화 등 소형 가전은 32개 전문 재활용 업체와 협력해 처리한다. 지역별, 품목별로 협력 업체를 키우고 있다.

도시 광산 붐을 어떻게 보나.

기본적인 방향은 맞지만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자원을 재활용할 때 가장 큰 문제는 회수 단계다. 효용 가치가 없는 것은 배출이 잘되는데, 가치가 있는 것은 재활용 단계까지 흘러오지 않는다. 효율적인 회수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휴대전화는 그냥 버려지거나 방치되는 것이 많은데, 지금처럼 제조사에만 재활용 의무를 주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이동통신사나 유통사도 재활용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취재=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사진= 김기남 기자






[출처 :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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