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라이프] 말기환자들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일명 존엄사법. 지난 2월 한나라당 신성진 의원 등 22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했다. 신 의원실 관계자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법안인 만큼 최대한 안정성을 담보한 뒤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안팎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일단 시행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합의가 되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존엄사법 시행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교계에서도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27일 NCCK 생명윤리정책협의회 주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박일준(감신대 강사) 박사는 ‘안락사와 존엄사, 어떻게 볼 것인가?’ 주제의 발제에서 “이제 기독교는 삶과 죽음의 연산식을 생각할 때가 됐다”며 “기독교적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삶과 죽음의 단절을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사실상 존엄사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정범 공동대표는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아직 존엄사에 대한 시민사회의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법제화는 필요하지만 존엄사법이 남용되지 않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존엄한 삶이 보장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존엄사법은 고통 경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존엄사 선택을 부추길 수 있다”며 “법제화 전에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호스피스 완화 치료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희헌 한신대 교수도 죽음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죽음을 신의 섭리로 이해할 때 안락사는 신의 뜻에 대한 도전이고 존엄사는 불경(不敬)이 된다”며 “육체적 죽음 너머의 종말과 부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과 적용과 관련한 신학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NCCK가 토론회를 개최한 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존엄사법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엄신형 대표회장과 이종윤 신학연구위원장 이름의 입장문엔 존엄사 법안을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한기총은 “존엄사법은 말기환자에게 육체적 고통 외에 심리적·정신적 부담감에다가 죄책감까지 가져다주는 비윤리적 발상으로 이미 약자가 되어버린 말기환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법”이라고 밝혔다. 한기총은 존엄사 법안 내용과 관련 “무의미한 치료 중단은 질병이 명백하게 치료 불가능한 말기질환이어야 한다”며 “말기상태에 대한 객관적·전문적인 판단을 위해 전문적인 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기총은 존엄사법 대신 ‘무의미한 치료 중단에 관한 법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총 33조로 된 존엄사법엔 말기환자의 의사에 반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보류한 자에겐 3년 이하의 징역, 말기환자의 의사에 반해 연명치료를 하는 담당의사와 의료기관의 장에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의 처벌규정이 명시돼 있다.
죽음에 대한 의학적 정의(김정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제공)
▲뇌사(brain death): 임상적으로 뇌의 활동이 회복불가능하게 비가역적으로 정지된 상태. 뇌졸중, 간질중첩증, 뇌외상 등에 의해 뇌사가 발생하지만 허혈성 뇌병증 및 뇌부종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질환이 뇌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서 뇌사 판정 절차에 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식물인간상태(vegetative state): 심장과 폐기능이 작동이 멈춰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을 받은 환자들이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상태. 뇌중에서 뇌간이 아닌 대뇌의 전반적인 손상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에서 뇌사와 다름. 호흡중추가 뇌간에 있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인공호흡기가 식물인간 상태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며, 식물인간 상태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간혹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에 있다가 회복하는 환자에 대한 보고가 발표되고 있지만, 의학적으로는 대략 1∼3개월 이상 경과하면 지속식물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라고 하며 식물인간상태에서 회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말기환자(terminal state): 의료계 중환자실 등에서 엄밀한 검토없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던 용어. 종말환자 임종환자 등이 같은 뜻으로 쓰이는 듯함. 신상진 발의의 존엄사법에서 정의된 바에 의하면 “말기환자”란 의학적 기준에 따라 2인 이상의 의사에 의하여 “말기상태”임을 진단받은 환자를 말함. 회복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하여 연명치료가 없는 경우 단기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 상태. 이 상태에서의 연명치료의 적용은 단지 죽음의 과정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 일반적으로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 병자의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1995년 로마 교황은 안락사를, “모든 고통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그 자체로써 그리고 고의적으로 죽음을 가져오는 행위나 부작위”로 정의하고, 이를 “하느님의 율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규정.
▲적극적 안락사: 자비적 안락사(Beneficient Euthanasia)라고도 불리며 영구 불치이며 합리적인 진통 방법이 없는 육체적 고통을 지닌 환자를 그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해서 (의료진에 의해)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 네덜란드 등 극히 일부국가에서 합법화되어 있다.
▲소극적 안락사: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 약물 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존엄적 안락사(Euthanasia with Dignity): 한때 일부 의료계에서 존엄사 이전에 사용되던 용어로 말기 환자에게 적극적인 치료 행위를 중지함으로써 초래되는 죽음을 의미. 환자의 죽음이 확실히 예상될 때 단지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죽도록 그대로 방치해 둔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
▲존엄사(Death with Dignity): 말 그대로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 최선의 의학적인 치료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의학적 치료가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한다고 하더라도 그 치료의 중단으로 생명이 더 단축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안락사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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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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