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봄, 갑자기 부산해졌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이 솟아나고 기화이초가 앞다투어 피어납니다. 겨울잠을 자던 곰, 나무 뿌리에 둥지를 튼 애벌레, 바위 밑에 엎드렸던 개구리까지 화들짝 놀라 뛰쳐나옵니다. 매년 봄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문득 어린 시절 내내 끙끙댔던 고민거리가 생각납니다. “도대체 누가 겨울방학을 앗아간 봄을 만들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제법 근사한(?) 과학적 고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봄처럼 저에게도 어린 시절의 고민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는 눈을 떴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전날 보았던 집안의 풍경, 잠자기 전의 사실들, 날짜, 할 일들이 하나하나 일목요연하게 기억난다는 사실에 “왜”라는 궁금증이 생긴 것입니다. 마치 전원을 켜면 부팅을 시작하는 컴퓨터처럼 잠에서 깨어난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아침에 깨어났는데 고장난 컴퓨터처럼 부팅이 되지 않으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시작하는 일상이 그냥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궁금증이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경북대 명예교수인 박동수 교수가 총장 취임 선물로 주신 '젊은 뇌를 지녀라'(시그마프레스, 2004)를 서가에서 찾았습니다.
이 책의 원전은 건강 관련 지식에 대해 설명한 미국의 베스트셀러 'Keep Your Brain Young'입니다. 세계 최고의 뇌 과학자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가이 맥칸(Guy McKhann) 교수와 하버드 의과대학의 마릴린 앨버트(Marilyn Albert) 교수가 50대 이상의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합니다. 이를 물리학을 전공하신 박동수 교수가 한국의 50대 이상을 위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책의 가치는 방대한 내용의 지식뿐만 아니라 번역자인 박동수 교수에 있습니다. 물리학자인 박 교수가 전공이 다른 의학 서적을 번역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정년 퇴직한 이후에 그 인고의 번역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말 그대로 “젊은 뇌를 가지는 방법”을 직접 보여 준 것입니다.
책은 한마디로 솔깃합니다. 이곳저곳 들추다보면 어느덧 빠짐없이 다 읽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태어날 때 400g 정도인 뇌, 성인이 되어도 1천400g 정도에 불과한 뇌가 숙주인 인간을 통해 해치우는 일들은 상상을 불허합니다. 단단한 두개골 안에 웅크리고 앉아 한 인간의 사소한 감정, 일거수일투족에서부터 시시비비, 부정부패, 국가 간의 전쟁에까지 관여를 하는 존재입니다. 역자의 말처럼 최악의 상태인 지체장애인 스티븐 호킹 교수를 보면 뇌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생로병사에 예외가 될 수 없는 인간 존재이지만 ‘뇌’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 부분은 노화와 기억, 수면, 스트레스, 우울증, 음주, 통증, 신체 기능, 감각, 치매, 파킨슨병, 뇌종양 등에 관한 이론을 실제 임상적 경험에 입각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뇌 질병의 예방과 증상, 진단, 치료, 약물 처방, 진행 중인 연구 등을 소개하고 있고, 마지막 부분은 뇌 질병 치료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고 그 대처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책은 의학전문 서적이면서도 실생활에 도움이 될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뇌를 위한 영양으로 비타민, 초본약제, 당,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내용, 뇌가 식욕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 남성과 여성의 성욕, 성적 반응과 성 활동의 문제에도 뇌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소상히 적고 있습니다.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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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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