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30, 2009

[가로지르기]“개성공단 등 기존 대북정책 유지하는게 더 이익”








사진 설원태 선임기자



루디거 프랑크 빈 대학 교수가 본 남북관계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서울사무소의 마크 치멕 대표가 지난 3월 중순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남북한을 동시에 체험했으며 한국어도 좀 할 줄 아는 동아시아 경제-사회 전문가인 루디거 프랑크 빈 대학 교수가 서울에 온다”고 말했다. 치멕 대표는 “프랑크 교수가 독일의 진보적 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한국에서 제대로 활동을 하는지 등 여러 주제를 놓고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면서 “언론인도 그의 인터뷰 대상”이라고 전했다. 필자는 지난달 26일 이른 아침 동국대 근처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프랑크 교수를 만나 한 시간 반 이상 그의 질문에 답변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향후 박사와 e메일 인터뷰를 하고 싶으니 잘 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프랑크 교수는 “인터뷰 중 기자로서의 직업적 질문을 자제하고 성의껏 대답해 주어서 고맙다”면서 “향후 e메일 인터뷰에 성실하게 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인터뷰는 프랑크 교수가 3월 말 한국을 떠난 뒤 보내 온 꽤나 긴 e메일 답변을 줄인 것이다. 남북한 관계가특히 껄끄러워진 요즘 그의 견해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프랑크 교수의 개인적인 북한 체험은 어떠했습니까.

“저는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과 평양의 김일성 대학의 학생교류 계획에 따라 1991년 어학연수생으로 처음 북한에 갔습니다. 그후 저는 아시아나 유럽에서 일반인, 공장 관리자, 외교관, 차관급 고위관리 등 북한인들을 꾸준히 만났습니다. 저는 동독과 구소련에 살아봤기 때문에 북한 체류는 저의 경험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북한인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존중하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북한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김일성 대학에서의 경험을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된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었는지 상당한 실망을 했습니다. 북한의 선생님들은 저를 위해 여러 가지로 많은 노력을 했고 저는 이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평양에서 외국인의 학생 생활은 서울·베를린·모스크바에서의 학생 생활과 너무 달랐습니다. 방과 후 저의 생활 범위는 너무 제한됐고, 그들과 개인적 친분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살아본 경험이 있지만, 평양의 생활은 너무 달랐습니다. 평양 체험은 저에게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연유로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저는 세계화 시대라고 해도 지역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1990년부터 한반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는 동아시아는 연구해 볼 만한 가장 흥미있는 지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공 사례인데도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잘 모르는 지역입니다. 저는 원래 중국을 공부하려 했으나 김일성-호네커(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 통역을 했던 카리스마 강한 저의 지도 교수님이 ‘중국 대신 한반도를 연구하라’고 설득했고 저는 이것을 받아들였습니다. 현재 저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북한에 대한 저의 관심은 그 교수와의 대화, 평양에서의 어학 연수생 경험, 사회주의 개혁에 관한 개인적 의문 등을 근거로 점차 자라났습니다. 저는 사회주의가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실태를 목격했고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통일을 경험한 독일인으로서 저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교수는 훔볼트 대학에서 한국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군요. 무엇을 공부했습니까.

“저는 원래 한반도의 현대 역사와 정치를 공부했고, 나아가 철학·문학·한문도 공부했습니다. 훔볼트 대학은 독일 내에서 현대 한반도를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정치 경제에 관한 강좌는 내용이 풍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시아에 초점을 맞춘 경제·국제관계를 공부했고, 여러 국제학술행사에서 학자들을 만나면서 연구할 만한 책과 주제들을 소개받았습니다. 저의 석사 논문은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의 리셉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한·독 관계사의 일부를 연구한 것입니다. 저는 이 리셉션에서 한국과는 인종, 결혼, 직업의 관점에서 무관하면서도 한반도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장년층 독일인들을 만났습니다. 후일 저는 그들이 한국전쟁 이후 함흥 재건 공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또한 동독이 북한에서 이룬 조그만 업적이라도 보존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 동독 총리의 아들을 만나는 등 많은 인터뷰를 했고, 마침내 동독 공산당의 문서보관소에 접근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김일성과 오토 그로테볼(동독의 첫 총리) 사이에 오고 간 서신들을 비롯해 북한에 파견된 독일 대사들이 작성한 ‘솔직한’ 보고서 등 수백건의 문서, 수천 쪽의 서류를 읽었습니다. 그후 저는 1954~62년 함흥 재건에 참여한 독일인들이 개인적 문서와 기록들을 모교인 ‘바우하우스 인 데사우’에 넘겨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몇 주간 머물면서 서류를 정리해 주는 대가로 다량의 문서들을 열람했습니다. 직원들은 손으로 쓴 한국어 문서를 정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 서류 정리를 시키면서 서류 열람을 허용했습니다. 저는 이들 문서를 종합해 책으로 냈습니다.” (프랑크 박사는 답변에서 Korea, South Korea, North Korea를 구분하는 것 같았다. 필자는 Korea를 한반도로 번역했다.)

-외국인 관찰자로서 이명박 정부의 북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남북한은 이념적·군사적 충돌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동·서독과는 너무나 많이 다릅니다. 오랜 기간 남한의 개발 패러다임은 북한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박정희는 개발 독재를 반공으로 정당화했고, 북한은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1998년 북한에 우호적인 남한의 대통령이 들어섰고 북한에는 새 지도부가 들어와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내걸었으나 다수의 남한 국민은 그 진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순진한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북한은 외부 압력을 견디어 내도록 건설된 체제입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지속적으로 협력적 접근이 있으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돌이켜 보면 남북정상회담·금강산 관광·개성공단 등은 엄청난 성공이었습니다. 햇볕정책은 밤나무와 유사합니다. 아직 10년밖에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취약합니다. 이 나무가 성장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현 정부는 전임 두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이익을 취할 수도 있을 겁니다.”

-북한의 현재 경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북한의 경제 사정은 단기적·장기적 관점에서 어렵습니다. 북한 경제는 체제 변화를 해야 합니다. 중앙 통제경제의 효율성이 작동하지 않는 체제입니다. 북한 경제가 나아지려면 개인의 에너지가 발산되도록 체제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같은 강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은 사회주의 체제를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약한 지도력으로는 이것이 어렵습니다.” (프랑크 박사는 경제를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서 매우 길게 설명했다.)

프랑크 교수는?

현재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동아시아 경제·사회학과장, 동아시아 연구소 부소장, 거버넌스 학교 학장으로 일하고 있다. 라이프치히에서 출생한 독일인이다. 그는 뒤스부르크 소재 메르카토르 대학에서 남북한 관계 전공으로 박사학위(경제학)를 취득했다. 훔볼트 대학, 콜럼비아 대학(뉴욕), 고려대, 경남대 북한연구소 등에서 교수로 일했다. 그는 ‘함흥 재건: 1954~1962’ ‘갈림길에 선 북한의 정치와 사회’ 등 여러 저서를 갖고 있고 ‘한국: 정치 경제 사회’(연간)와 ‘유러피언 동아시아 연구 저널’의 공동편집장이다.

<설원태 선임기자 solwt@kyunghyang.com>

-Tell me about your contacts with North Koreans. What you feel toward them, etc. If possible, you can tell me without naming them.

My first direct contact with people from North Korea was in 1991, when I arrived as a language student at Kim Il Song University in Pyongyang based on an old exchange agreement with Humboldt University of Berlin that had survived German unification.

I have been meeting North Koreans ever since, both in Asia and in Europe, ordinary people, including high-ranking officials up to the level of Vice Minister, as well as company managers and of course many diplomats. My approach towards them is informed by my own past living in East Germany and the Soviet Union. First and foremost, I try to respect them. I can’t really tell how they feel about their life, but I am very sure their self perception is very different from what most of us think it is. If I compare what is reported in the German media about life in East Germany with my own experience there, I sometimes think we speak about two different countries.

People tend to like simple images, like good and bad, black and white. But reality is often much more diverse. I don’t know everything about the reality in North Korea, and what I know is not always very pleasant. But I am very cautious making hasty judgements, based on my own experience. And I believe that there are bad actions in the world, actually too many of them; but no bad people.

-How did you come to get interested in Korean affairs? Does it pay to study (North) Korean affairs?

I became interested in Korea in 1990 because I believed (and still do) that especially in the age of globalization, local knowledge matters. East Asia seemed to be the most interesting region to study, and Korea ? South Korea - was clearly a white spot for most Europeans despite its spectacular economic achievements. I originally wanted to study China, but a very charismatic professor who also used to be the translator between Kim Il-sung and Erich Honecker convinced me to focus on Korea instead.

I have never regretted that decision. My interest in the North emerged from many conversations with that professor, out of my semester in Pyongyang, and my interest in the question of the reform of socialism. I have seen with my own eyes that socialism did not function despite many good intentions and many hard working people, and I wanted to know why. As a German, I have a special view on the many issues related to unification, a process that is behind me but ahead of Koreans. So I think it makes sense for me to be close to Korean affairs, that I can even make a contribution. In fact, I find this to be a very rewarding subject area.

-Your experiences at the Kim Il Sung University?

My experience in Pyongyang was largely disappointing, which was at least partly a result of wrong expectations on my side. Our teachers tried very hard, and everyone around did his or her best to make life there comfortable. I still appreciate all these individual efforts, maybe even more now than I did then. However, being a foreign student in Pyongyang was very different if compared to living in Seoul or Berlin, even Moscow.

The range of after-school activities in North Korea at that time was very limited. It was hard, if not impossible, to form personal relationships with local people. I had lived in other socialist countries before, but this was unusual. In hindsight, I would describe my experience as a typical case of culture shock.

-What does it mean that you have MA in Korean studies from Humboldt University? What aspect of Korean affairs did you study? Please be specific in what was your thesis, etc.

I wanted to focus on contemporary aspects of Korea, including history and politics, but also had to study philosophy, literature, even Hanmun. Humboldt University was the only place in Germany where one could study contemporary Korea at all. Still, the number of courses offered in Korean economy and politics was very limited, so I had to look for such knowledge outside my department. I came to study economics and international relations, the latter focused on Asia, and met scholars from other universities and countries who pointed me at books and topics that I then explored. I started participating in international conferences very early and have learned a lot from my senior colleagues.

My MA thesis was on a chapter of German-Korean history that I came across while participating in a reception at the North Korean embassy in Berlin. There were many senior German people with no obvious connection to Korea (like ethnicity, marriage, job) but nevertheless with a strong and emotional bond to that country. When I asked, I discovered that they had been involved in the reconstruction of a city called Hamhung in North Korea in the 1950s. I later found out that this was the second largest city of North Korea, and a center of its chemical industry.

I was surprised because East Germany used to be very keen on keeping up the memory of even the smallest achievements ? but I had never heard about such a huge and obviously very honorable project. So I decided to dig deeper, conducted a number of interviews including one with the son of the first East German Prime Minister, and finally ended up in the now opened archive of the East German Communist Party, the Socialist Unity Party. I went through hundreds of documents and thousands of pages, including letters from and to Kim Il-sung and Otto Grotewohl, East Germany’s first Prime Minister, very frank reports by ambassadors, etc.

Then I was informed that one of the leading members of the group of Germans who had rebuilt Hamhung in the period between 1954-1962 had handed over his personal materials and notes from that time to his old Alma Mater, which happened to be the famous Bauhaus in Dessau. So I spent a few weeks there, sitting at the freshly renovated desk of the first Bauhaus director, Walter Gropius, the father of modern architecture. I was allowed to look through the documents in exchange for ordering them into files for the Bauhaus archive, which went beyond the abilities of the staff there because many of the documents were in Korean handwriting.



In the end, I had acquired enough documented knowledge to write a book about this remarkable story, in the hope that this would become the beginning of a research project involving many of our students who would go out and interview as many of the former German architects, city planners, and workers who spent years of their lives helping to rebuilt one destroyed part of Korea. Unfortunately, this did not materialize for a number of reasons, all of them related to the post-unification changes in Berlin and at Humboldt University.

The reason for the silence around the Hamhung project was the Sino-Soviet confrontation in the late 1950, a taboo topic in the socialist camp that always tried to pretend great brotherly unity despite serious conflicts within. I saw how skilfully the North Korean side extracted resources from Moscow and Beijing, although both were very sceptical of Pyongyang.

This helps me a lot in understanding the present situation, and sometimes I think that merely the Soviet Union has been replaced by the USA and South Korea, but the same game is still going on. One major difference is that North Korea now has nuclear weapons, which makes it virtually impossible to just ignore them as China ad the Soviet Union decided to do in the early 1960s. Certainly, we can learn a lot from that past example, and part of my research today is about that issue.

-What did you do with Kyungnam University?

My interest in North Korea had come to an end after I finished the book on Hamhung. I did not believe it was worth wasting my time on such a bizarre subject anymore, and like most other people, I expected that a collapse would come rather sooner than later.

I turned my research focus to telecommunications in South Korea, which resulted in my second book on regulatory reform in that sector. I concentrated on economics and political economy. Then in 2002, I heard about the July reforms and started looking at North Korea again. To my great amazement, I found that there had been substantial changes, both in real life, but even more so in terms of ideology. The later is absolutely crucial for a socialist system and often underestimated in the West. Meanwhile, the quality of work on North Korea done in South Korea increased enormously, and IFES (the Institute of Far Eastern Studies) and the University of North Korean Studies were among the top institutions. So our contact was natural, and have developed a close professional relationship ever since. This intensified in 2005, when I was a visiting Professor at Korea University. I have become an Adjunct Professor at Korea University and at the University of North Korean Studies. In February 2009 we signed a Memorandum of Understanding between IFES and my university.

-As a foreign observer, do you see differences in Korean politicians (under President Lee Myung bak) in approaching North Koreans?

I think we must understand the very specific South Korean perspective on the problem. North Korea has confronted the South ideologically and militarily in a way that, luckily, the two parts of Germany never experienced amongst themselves. This has created many negative emotional memories. Reconciliation is a difficult process.

For a long time, South Korea’s development paradigm was based upon the notion of defending against the North. The developmental dictatorship of Park Chung-hee was justified by anti-Communism. North Korea did not do much to change this negative image, to put it mildly. Then all of a sudden, this had changed with the new leadership in North Korea and the arrival of a new South Korean president in 1998 who had formerly been accused of and almost been killed for being a pro-North Korean. To many South Koreans, this might have come too quickly. President Kim Dae-jung started a policy that I still believe is the most effective way of approaching North Korea in the long run, although I also think that not all people understood the actual effects of the sunshine policy. They misinterpreted it as embarrassing naivety by some idealistic progressives. I think it was not. North Korea as a system is built to withstand external pressure, but it has little means to defend against a consistently cooperative approach. The summit meeting, Mt. Kumgang, Kaesong ? these are enormous successes, and we will only in hindsight know about the actual effects.

The problem with the sunshine policy is that it can be compared to planting an oak tree. When you put the seed into earth, you have the image of a big oak in your mind. After ten years, a little plant has grown, but it is still small and fragile, nothing like a big tree. Pointing at this plant and saying “what a failure” is easy, but what else could we expect? An oak needs a long time to become big and strong.

The problem with long term strategies is that they are hard to follow in a democracy. And North Korea policy is much more complex than planting a tree. There is the nuclear issue, there are human rights, a humanitarian crisis, and a quickly developing world that has its impact on Korea. South Korea might not have the time to wait for 100 years. So I fully understand why many politicians and voters became increasingly sceptical of the sunshine policy. Good marketing is part of every business success; a good product alone is not enough. Domestic marketing of the sunshine policy was not perfect.

The presidential elections in 2007 reflected the concerns by many South Koreans. Now we have a situation when the Lee MB government could actually be lucky enough to harvest what Kim Dae-jung and Roh Moo-hyun have planted, because a sudden collapse of North Korea has become more likely than it was in the past due to health of Kim Jong-il and the long-term effects of the market reforms.

In a way, I think the North Korean leadership is very grateful that the new South Korean government is offering them, finally, a way out of all the risky cooperation projects that started to get out of control. Am I happy with the current North Korea policy? This is not up to me to decide. But although I think that mistakes have been made, now that things have gotten so far, all the Lee MB government can do is stay the course. Communication between Seoul and Washington will be crucial.

-What roles can Europeans play in North-South Korean affairs, and in the six-party talks? I feel that Europeans are excluded in this process, although some European diplomats in Seoul say that they want to play a role.

I do not think that Europeans are excluded. I would rather say there is, although for different reasons, a very broad agreement that it would be better if the EU did not join the 6PT at this time. Europe could win little, but would enter a diplomatic minefield instead. The EU has also much more pressing issues to resolve,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and would not need another problem. The balance of power at the 6PT is delicate, and the entry of the EU might disturb it. For now, the EU has a very important role to play as a mediator and as a neutral broker.

Both Koreas utilize this mechanism when official relations at the 6PT get stuck; I have personally witnessed a number of such instances. Italy is playing a particularly supportive role in this regard, as well as Sweden. Austria not only hosts the IAEA, but also both Korean embassies, and is regarded as a neutral country by Pyongyang. So both sides can meet there without much effort ad publicity. This is what Europe can contribute, and it is much more substantial than being just the 7th Party to the talks.

Besides, I am very pessimistic about the chances for this format (the 6PT) to achieve any lasting solution, because at its core, it is set for confrontation, not cooperation. Also, sometimes it seems as if the USA and China negotiate their bilateral relationship at these talks, and Korea is only the stage for this play. This is why I have urged South Koreans to become more active and take the initiative, to “claim ownership” of the Korean issue.

I know that North Korea is not always helpful in this respect, but I think they are also worried about the big powers sidelining them. And they are much more successful in setting the topics and the pace. I believe that a multilateral setting is the only way to resolve the North Korea issue, but I don’t think the 6PT are the right form. An East Asian Community, including ASEAN, would be much better suited.

-Your assessment of North Korean economic situation? What is the solution to the North Koreans‘ poverty?

The economic situation of NK is difficult for a number of short-term and long-term reasons. The solution is very obvious: system change. An economic system based on central coordination can be compared to breathing. Imagine that scientists find out that the level of oxygen in our blood can become better if we breathe deliberately, in a controlled way, and turn off the subconscious, automatic mode that we use.

At first, the results will be quite good; but we will have to keep thinking about breathing ? in, out, in, out. After a while we will begin to forget about breathing, so some friendly person will remind us. When we get tired and fall asleep, a less friendly person will be needed to keep us awake, because otherwise, we will stop breathing, and the body will die. At the end, we will die anyway, after a long process of getting weaker and weaker.

In a way, this is how a socialist economy functions. At the beginning, resources are centrally allocated, nothing is wasted on overproduction, and the economy does well. Then, eventually but surely, people will try to work less and focus on other issues, bureaucrats will coordinate less efficiently and rather think about their career, and propaganda will be used even more intensely to keep everyone committed. If that does not work, the state needs other means to keep everyone on target, including repression. The costs of this are enormous and the effects far from perfect.

The key to a successful economic system is, at the basic level, the automatic behavior by humans to maximize their utility, whatever they regard as such. They have to be able to breathe naturally. If this automatic function is turned off by too harsh restrictions, the whole system will become weaker and weaker. South Korea has experienced a period of strong state control, but it kept the ambitions and incentives at the basic level intact.

This is what made it such a success despite strong state influence. North Korea, like most other socialist countries, has depleted itself of this enormous source of energy. All attempts at improving central coordination will fail in the end, if the basic paradigm of the economy remains unchanged. This is not a political statement; it is the result of numerous studies on socialism.

I think the only solution to North Korea’s situation is the liberation of the individual energies of its people. This does not have to be a liberal market economy; South Korea after 1961 and China after 1979 have shown other ways. The tricky question is how to do this surgery without killing the patient, as Michail Gorbatchev had to experience in the Soviet Union. With a strong and healthy leader, this should be doable. A weak leadership, a deteriorating domestic situation, and external pressure will not create a reform friendly environment, but rather lead to stubbornly sticking to old principles, and eventually a collapse.

-Can you compare North Korea and East Germany?

Of course we can, but such a comparison should be informed by a proper understanding of both countries, their histories, and their geopolitical situation. Comparing does not mean that the two countries are the same; yet, we can learn a lot from looking at the issues East Germany had to deal with after unification, and asking ourselves how these would be tackled in Korea. Examples include how to deal with the military. If a law would be passed that guarantees every military officer who has not violated any major law to keep his job after unification, this information would reach North Korea and decrease the fear of insecurity there.

There is also the difficult question of acts that are legal under one constitution, but illegal under the other; how can somebody be punished for having violated the laws of a country he did not live in? Germans found out the hard way, when many people were and still are disappointed that except for the Ministry of State Security and a few soldiers who had the unlucky faith of having served at the border at the wrong time, almost no representative of the old regime could be punished. Another important question are property rights, including those that are claimed by people living in South Korea.

Without clearly defined property rights, a private economy will not function. If ownership of, for example, a high-rise building or a factory in Pyongyang is not clear because it stands on what used to be three different pieces or land before 1945, nobody will invest, and the building will collapse.

We have seen that happen in Germany. My own family reclaimed a house we once owned and finally got it back, but only after years and a tedious process. This can be done much better. South Korea can now use its time and resolve all these issues calmly. How this will be done ? that depends on the specific Korean situation. But the issues will arise, that is clear. Once unification happens, there will be no time left, one has to move quickly. We also know that transformation of socialist systems often starts with a transformational recession due to adjustment, before output finally starts growing. This list could be continued.

-What is wrong with Korean government’s foreigner policy?

I personally have no complaints about the policy of the Korean government vis-a-vis foreigners, especially if I compare it with my experience of living, for example, in the United States. I know there are many complaints, but I personally have always felt welcome in Korea and treated with an amount of respect that sometimes even embarrasses me. My knowledge of the Korean language helps, but this is the same in any other country. The city of Seoul changes to become more liveable, which I consider very important to attract high-level expatriates, and access to the rest of the country is much better as it used to be.

Well, I hope this helps. I could write much, much more on the single points, but then it would get even l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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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하이닉스 `숲 가꾸기` 친환경 실천











청주사업장 인근 대청호 공원에 1400여그루 식재

`Save Earth, Save Hynix.'

하이닉스가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발적 활동을 다양하게 펼쳐 주목을 끌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대표 김종갑)는 지난 29일 임직원 150여명이 청주사업장 인근 대청호 공원 약 500평 부지에 나무 1400여 그루를 심는 `하이닉스 숲 가꾸기'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공원관리사업소와 협력해 2010년까지 모두 1200평 녹지를 조성하고, 대청호 주변 유휴 토지로도 녹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숲가꾸기 후원금 만큼 사측에서도 기부금을 내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녹지를 조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는 이에 앞서 협력회사들과 `친환경 그린파트너십 구축 협약'을 체결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경영체제와 온실가스 감축 등에 협력키로 했다. 특히 협력사는 친환경 원료ㆍ부품, 친환경 제품 개발ㆍ생산ㆍ유통에 노력하고, 하이닉스는 이같은 친환경 제품 구매를 확대키로 했다.

회사는 또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원 1인당 1년동안 가꿔야 할 나무를 계산해주는 `탄소나무 계산기' 홍보활동, 가정내 전기료 절감 정도에 따라 시상하는 `언플러그 원 모어 타임' 이벤트 등 탄소중립 프로그램을 발굴해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회사는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업계 최초로 청정개발체제(CDM)사업 참여,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배출원에 대한 체계적 관리 상태를 파악해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로 작성하는 등 다양한 온실가스 저감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위원회로부터 `빙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영지원실장 한오석 상무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 온실가스 저감노력 등 자발적인 환경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지속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승룡기자 srkim@

◇사진설명 : 하이닉스반도체 임직원들이 청주 대청호공원에서 나무 1400여 그루를 심는 등 '하이닉스 숲 가꾸기' 행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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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룡

srkim@






[출처 : 디지털타임스]

`하이닉스 숲 가꾸기` 운동







자발적 친환경 활동 구슬땀

`Save Earth, Save Hynix.'

하이닉스가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자발적 활동을 다양하게 펼쳐 주목을 끌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대표 김종갑)는 지난 29일 임직원 150여명이 청주사업장 인근 대청호 공원 약 500평 부지에 나무 1400여 그루를 심는 `하이닉스 숲 가꾸기'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공원관리사업소와 협력해 2010년까지 모두 1200평 녹지를 조성하고, 대청호 주변 유휴 토지로도 녹지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숲가꾸기 후원금 만큼 사측에서도 기부금을 내는 매칭그랜트 방식으로 정기적으로 녹지를 조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는 이에 앞서 협력회사들과 `친환경 그린파트너십 구축 협약'을 체결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경영체제와 온실가스 감축 등에 협력키로 했다. 특히 협력사는 친환경 원료ㆍ부품, 친환경 제품 개발ㆍ생산ㆍ유통에 노력하고, 하이닉스는 이같은 친환경 제품 구매를 확대키로 했다.

회사는 또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직원 1인당 1년동안 가꿔야 할 나무를 계산해주는 `탄소나무 계산기' 홍보활동, 가정내 전기료 절감 정도에 따라 시상하는 `언플러그 원 모어 타임' 이벤트 등 탄소중립 프로그램을 발굴해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회사는 기후변화협약에 대응하기 위해 반도체업계 최초로 청정개발체제(CDM)사업 참여,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배출원에 대한 체계적 관리 상태를 파악해 온실가스 인벤토리 보고서로 작성하는 등 다양한 온실가스 저감활동을 인정받아 지난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에) 한국위원회로부터 `빙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경영지원실장 한오석 상무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제 온실가스 저감노력 등 자발적인 환경경영에 참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지속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승룡기자 sr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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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룡

srkim@






[출처 : 디지털타임스]

"여성 주도 녹색혁명"..'지 코리아' 시동







여성부, '여성이 그린 세상, G-Korea' 개최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여성이 주도하는 친환경 생활 문화의 실천과 확산을 위해 여성부와 여성단체들이 공동으로 펼쳐나가는 '지-코리아(G-Korea)' 캠페인이 시동을 걸었다.

여성부는 30일 이명박 대통령, 변도윤 여성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여성단체 관계자 등 각계 인사 1천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여성이 그린 세상, G-Korea' 행사를 열고 캠페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캠페인 명칭 '지-코리아'는 녹색생활문화 확산(Green Life), 여성 일자리창출(Getting Job), 희망 나눔(Giving Hope)을 통해 만들어가는 희망 한국을 의미한다.

이날 행사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대한어머니회중앙연합회 등 69개 여성단체의 회원과 아파트 부녀회 등으로 구성된 여성실천단 '위 그린(WE Green)' 출범식에 이어 '위 그린' 실천 결의문 발표, 한반도 녹색지도를 완성하는 퍼포먼스 순으로 진행됐다.

'녹색성장과 여성경제인의 역할'을 주제로 한 포럼과 중소기업의 친환경 상품 전시, 친환경적 운전 습관의 생활화를 다짐하는 서명식 등도 곁들여졌다.

위 그린은 여성(Woman)과 함께(With) 환경(Environment)과 지구(Earth)를 생각한다는 뜻의 결합어로 여성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생활 속의 녹색 성장을 이끌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 그린은 친환경 제품 구입, 물과 전기 절약, 1회용품 사용 자제, 적정 실내온도 유지, 대중교통 이용, 정시퇴근제 실천,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생활 속 온실가스 줄이기, 지역 내 위기 가정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다.

변 장관은 "여성부와 여성계가 하나로 뜻을 모아 녹색생활 문화혁명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행사"라면서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 하나가 모여 커다란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성부는 향후 지역별로도 위 그린 출범식과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지속적으로 캠페인을 추진, 녹색생활 문화를 전국적으로 확산해나갈 방침이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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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April 29, 2009

북극이 열린다··해운강국 도약 기회?







[머니투데이 이상배,기성훈 기자]- 빠르면 2013년부터 여름 동안 북극 얼음 사라져



- 네덜란드서 한국까지 항해시간, 24일→14일로 짧아져



- 부산항 최대 수혜··북극항로 환적항으로 유망





▲출처: 구글 어쓰(Google Earth)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의 얼음이 기존 학계의 예상보다 빠르게 녹기 시작하면서 북극항로 개척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극항로가 열릴 경우 부산항이 상하이, 싱가포르를 일부 대체하는 핵심 환적 항으로 떠오를 뿐 아니라 국내 조선, 해운업계도 새로운 '블루오션'을 맞이할 수 있다.





2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최근 캐나다 라발대 북극연구소는 2013년 여름 동안 북극의 빙산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캐나다 앨버타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북극 빙하의 두께는 2002∼2007년 6년간 절반으로 줄었다.





1990년대까지도 북극의 빙하는 2100년은 돼야 하절기 동안 사라진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최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예상 시점이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 현재 해양 전문가들은 늦어도 2030년쯤에는 여름 동안 북극해의 얼음이 사라지고, 2050년쯤에는 연중 북극항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선박이 북극항로를 통해 유럽과 한국을 오갈 경우 운항시간은 지금의 60% 수준으로 단축된다. 지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부산까지 갈 경우 지브롤터해협, 수에즈운하, 말라카해협을 거쳐 총 24일이 걸린다. 반면 북극항로를 거치면 14일이면 닿는다.





지금도 베링 해협을 거쳐 대서양으로 나가는 북극 북서항로의 경우 여름철에 1년에 20∼30척의 선박이 다니고 있다. 유럽과 극동을 잇는 북극 북동항로의 경우에도 독일 해운사인 벨루가그룹이 올 여름부터 상업용 선박의 운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 정부는 북극 북동항로 설정 과정에서 한국 측의 입장을 반영시키기 위해 지난해 4월 북극 이사회에 '참관자'(옵저버) 자격을 신청했다. 현재 북극 이사회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 8개국으로 이뤄져 있다.





북극항로가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할 경우 최대 수혜자는 부산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북극항로가 열릴 경우 지리적 위치와 물동량을 볼 때 부산항이 환적 항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싱가포르항, 상하이항, 홍콩항, 선전항에 이어 세계 5위다.





이 관계자는 "북극항로가 뚫리더라도 당분간은 유빙의 위험성 등 때문에 대형 선박보다는 2000TEU급(1TEU=20피트 짜리 컨테이너 1개) 이하의 소형 선박이 주로 이용할 것"이라며 "이 경우 대형 선박을 주로 취급하는 상하이보다 부산이 주요 환적물량을 유치하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디드릭 톤셋 주한 노르웨이 대사도 지난 3월 부산항만공사(BPA)를 방문, "북극항로 개척으로 부산항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운업계도 수혜가 예상된다. 유럽과 동북아를 잇는 북극항로가 개척될 경우 기존 주간선 항로(수에즈운하-말라카해협)에서 그리스, 노르웨이, 일본 해운사에 밀려 확보하지 못한 해운 물량들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국내 조선업계 역시 북극항로를 새로운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북극항로가 열리더라도 여전히 떠다니는 얼음(유빙)이 많아 얼음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내빙선 또는 얼음을 부술 수 있는 쇄빙선이 있어야만 북극항로의 운항이 가능하다. 내빙선의 경우 일반 선박에 비해 가격이 20∼30% 높아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통한다. STX유럽의 경우는 쇄빙선에 대한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는 운항거리 및 운항시간 단축 등에 있어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다만 고가의 내빙선 등이 필요하고, 운항 시 보험료가 높다는 점 등 해결해야 할 점이 많은 만큼 장기적으로 정부 차원의 치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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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해외논단] 제2의 녹색혁명이 필요하다





식량 부족으로 10억명 굶주려



GM 곡물 재배 등 증산 힘써야

리처드 G 루거 美 상원의원
세계는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지 못하고 다수의 빈민들은 식량을 살 형편이 못 된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근 10억명이 굶주린다.

지난해 세계에서 발생한 식량위기가 주목을 받았다. 세계의 곡물 가격이 폭등하자 항의하는 폭동과 시위가 19개국에서 벌어졌다. 현재 세계경제의 붕괴로 수백만명의 빈민이 추가로 발생하여 식량 조달 능력을 상실할 위험에 처했다.

세계의 장기적인 식량 공급 전망 역시 어둡다. 예상되는 인구 증가와 소득 증대 및 육류 소비 확대를 기초로 계산할 때 세계의 농업 생산량을 2050년까지 배로 늘릴 필요가 있다. 식량 증산의 장애 요인도 만만치 않다. 물의 공급량이 줄고 기후변화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기후는 더욱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고 가뭄도 더 빈번해질 전망이다. 해수면이 상승하여, 생산성이 가장 높은 강 하구의 비옥한 삼각주가 대거 물에 잠길 가능성도 있다.  

농경지 확장을 통한 2배의 식량생산 노력은 광범한 삼림 벌채를 초래하고 지역 생태환경에 심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농부들이 기존의 경작지에서 산출량을 늘리려면 인프라 및 농업 기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기아 및 식량 부족으로 인한 각종 질병은 인도적인 비극이다. 매일 2만5000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관련된 원인으로 죽어간다. 굶주린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어린이들의 생존율이 낮아지고 정신 및 신체 발달의 장애를 겪는다. 

기아는 국제평화와 미국의 안보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굶주린 사람들은 자포자기하고 절망은 분쟁과 과격 행위의 원인이 된다.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여러 지역의 가뭄, 식량 수출국들의 잘못된 결정이 작년과 같은 곡물가격 폭등을 초래하고 세계의 농업 구조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녹색혁명이 성공했을 때 인류는 기아의 망령을 이겨낸 것으로 보였다. 국제사회는 기아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고 경계심을 풀었다.

농업 부문 투자는 급격히 줄었다. 2007년 부유한 나라들은 해외원조의 4%만 농업부문에 제공했다.

식량난이 가장 심각한 아프리카에서는 농업부문에 대한 해외원조가 1989년 41억달러에서 2006년에는 19억달러로 급감했다. 아프리카의 주식인 옥수수의 1인당 생산량은 1980년 이후 14%가 줄었다. 

새로운 농업기술 및 신품종 개발을 위한 투자의 감소도 식량문제를 악화시킨다. 산출량이 더 많고 악천후에 더 잘 견디며 병충해에 강하고 영양이 더 많은 신품종 개발이 중요하다. 

세계는 새로운 녹색혁명이 필요하다. 미국이 앞장선 기아 퇴치에 다른 나라들이 호응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녹색혁명은, 바이오기술과 유전자조작(GM) 종자 같은 새로운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이 두 가지는 대규모 식량 증산을 가능케 한다.

GM 농산물은 안전성이 입증되었고 살충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 생산량을 높이고 악천후에 대한 내성이 입증되었지만 유럽인들은 GM 신품종 재배에 반대한다. 바이오 기술에 반대하는 유럽의 적극적인 로비의 위세에 눌린 아프리카 국가들이 특히 GM 농산물을 활용하지 못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다수 지역에서 GM 곡물이 재배되고 미국은 옥수수의 80%가 GM 품종이다.

안전한 GM 기술에 대한 유럽의 반대는 단기적으로 아프리카의 기아를 악화시킨다.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농업을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들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현재의 예상이 맞다면 아프리카의 농업생산은 앞으로 10년 동안 35% 줄어들어 기아 발생 및 대량 이주와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아프리카 농업에 과학과 기술을 응용하는 길만이 그러한 재앙을 피할 수 있다.

리처드 G 루거 美 상원의원

워싱턴 타임스·정리=오성환 외신전문위원

A new green revolution
Richard G. Lugar and Norman Borlaug

The world is not producing enough food, and many poor families cannot afford to buy the food that is available. As a result, nearly a billion people, a sixth of the Earth's population, do not have enough to eat.

This global food crisis erupted into public view last year when food prices spiked around the world and food riots and demonstrations rocked 19 countries, from Bangladesh to Egypt. Today's worldwide economic collapse threatens to push millions more into poverty, making them unable to buy enough food to feed their families.

The long-term prospects for global food supplies are equally troubling. Based on expected population growth, rising incomes and wider meat consumption, it is estimated that the world's farmers will have to double their output by 2050. They will have to do so in the face of rapidly depleting water supplies and the impact of climate change, which threatens altered weather patterns and droughts. Moreover, rising sea levels could submerge river deltas that are among the most agriculturally productive regions on Earth.

Attempting to double food production by increasing the acreage under cultivation would cause widespread deforestation and put significant stress on local ecologies. Farmers will have to get much higher yields from land already in production, requiring major investments in infrastructure and agricultural technology.

The hunger and related diseases resulting from food insecurity are a humanitarian tragedy: An estimated 25,000 people per day die of malnutrition-related causes. Hungry children suffer worst, with low survival rates, stunted bodies and impaired cognitive development. Moreover, hunger has profound implications for peace and U.S. national security. Hungry people are desperate, and desperation often sows seeds of conflict and extremism.

The causes of this calamity are many. Acute factors such as soaring energy prices, local droughts and bad decisions by food-exporting countries led to last year's price spike and exposed structural weaknesses in the world agriculture system. After the green revolution of the 1960s and 1970s seemingly vanquished the specter of world famine, the international community prematurely declared victory over hunger and let down its guard.

Investments in agriculture tumbled. By 2007, rich countries devoted merely 4 percent of their foreign assistance to agriculture. U.S. agricultural aid, adjusted for inflation, fell 80 percent from the 1980s to the early 2000s.

In Africa, which has the most severe food problems, donor aid to the farm sector plunged from $4.1 billion in 1989 to just $1.9 billion in 2006. Africa's per capita production of corn, its most important staple crop, has dropped by 14 percent since 1980.

Equally troubling are sharp cutbacks in research into new farming technologies and seed varieties that could increase yields, cope with changing climate conditions, battle new pests and diseases and make food more nutritious.

The world needs a new green revolution. The Lugar-Casey Global Food Security Act, S. 384, introduced in February, could help launch one. The Foreign Relations Committee approved the bill April 1, and it can now move toward consideration by the full Senate.

The legislation calls for the United States to make food and agriculture a foreign policy priority. It would require the administration to appoint a high-level coordinator to devise and implement a governmentwide food security strategy, and it would authorize $10 billion over five years for foreign agriculture assistance, with special attention to research and outreach, so small farmers can quickly utilize breakthroughs made in the laboratory. Helping small farmers raises rural incomes, thus easing poverty, hunger's chief cause.

If the United States leads the battle to eradicate hunger, other nations will follow.

This new revolution won't succeed without new tools, namely biotechnology and genetically modified (GM) seeds, to meet the enormous demands for increased production. But Europeans oppose most GM technology, despite its proven safety and success in cutting pesticide use, raising output and adapting to adverse conditions. African countries in particular have been intimidated by aggressive European lobbying from deploying biotechnology, widely used in many places, including America - GM varieties comprise 80 percent of our corn crop.

European opposition to safe GM technology contributes to African hunger in the short run. In the long run, it virtually dooms those countries' efforts to adapt their agriculture to changing climate conditions. If current global climate forecasts are right, farm yields in Africa could plummet by 35 percent in coming decades, leading to starvation, mass migration and conflict. Only through the applic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to African agriculture can such a catastrophe be averted.

Thomas Malthus warned 200 years ago that food production would not keep pace with population growth. He did not foresee how technology and innovation would forestall his dire predictions. Today, we can either succumb to Malthusian pessimism or once again invest in agriculture and embrace technological solutions inspired by the green revolution. It is both a moral and security imperative that we act.

erupt:폭발하다  malnutrition:영양실조 implication:암시, 의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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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녹색생활문화 실천 여성들 뭉쳤다







녹색생활문화 실천을 위해  아파트 부녀회와 학부모회 등 전국 여성들이

뭉쳤다.



 



여성부는 녹색생활문화 실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지 코리아(G-Korea) 운동을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지 코리아는 녹색생활문화 확산(Green Life), 여성 일자리 창출(Getting Job),

희망 나눔(Giving Hope)을 통해 희망 한국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다.



 



여성부는 이를 위해 지 코리아 여성협의회와 함께 ‘여성이 그린 세상, G-Korea'

행사를 오는 30일 3시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여성 1000여 명이 참가해 지 코리아 실천단 ‘위 그린(WE Green)’

출범식을 갖는다.



 



위 그린 WE는 W(여성-Woman, 함께-With)와 E(환경-Environment, 지구-Earth)의

결합어로 여성과 시민사회가 함께(WE) 생활 속 녹색성장(Green)을 이끌어 나간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여성단체 회원과 아파트 부녀회, 학교 학부모회 모임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위

그린은 △친환경제품 구입 △물 아껴 쓰기 △실내온도 적정 유지 △1회용품 사용

줄이기 △  대중교통 이용 △전기 사용량 줄이기 △정시퇴근제 등 7대 약속과

CO₂ 가계부 작성 등의 다양한 녹색생활 실천과제를 수행·홍보하게 된다.



 



이날 행사에는 변도윤 여성부 장관과 이만의 환경부 장관,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지 코리아 참여 단체, 위 그린 단원 등 12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 빗물을 이용한 천연 잔디 조성제품,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아기 딸랑이 등의

친환경 유아용품과 중소기업 친환경 우수상품 전시도 이뤄진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은 “지 코리아 운동은 여성계와 시민사회가 하나로 뜻을 모아

‘녹색생활 문화혁명’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행사”라며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 하나가 모여 커다란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의: 여성부 여성경제위기대책추진단 02-2075-4701






[출처 : 대한민국 정책포털]

Tuesday, April 28, 2009

부산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사업 선정







【부산=뉴시스】

부산대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하는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World Class University)육성사업의 전공·학과 신설 지원에 선정돼 올해 하반기에 '인지메카트로닉스공학과'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

세계수준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은 지난해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세계 수준의 해외 학자를 초빙해 3년 이상 국내에 머물게 하면서 국내 참여 교수진과의 공동연구로 국내 대학의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도달토록 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다.

부산대 '인지메카트로닉스공학과'는 나노시스템공정공학과 정명영 교수를 팀장으로 국내 교수 7명, 해외저명학자 6명의 교수진으로 구성된 대학원 과정(석사 과정 30명, 박사 과정 15명)으로 개설된다.

해외학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2명), 캐나다 오타와대학(1명), 호주 스윈번대학(1명), 일본 도쿄대학(1명) 및 싱가포르 국립대학(1명)의 세계적 연구 역량을 지닌 교수가 향후 5년 동안 매년 1학기 이상 부산대에 머물면서 교육 및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연구 주제인 '나노 광메카트로닉스 기반 인지공학'은 정 교수팀이 새롭게 제안한 분야로 향후 인간 중심 사회의 도래 시 중요한 뇌와 기계의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의 핵심인 나노 센서, 인지신호 이미징 및 인지 반응 해석을 대상으로 하는 최첨단 연구분야 이다.

부산대 관계자는 "사업 성공 시 부산대가 이 분야의 세계적 연구중심지가 됨으로써 연구팀과 함께 부산대학교의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된다"고 밝혔다.

강재순기자 kjs0105@newsis.com






[출처 : 뉴시스]

"우린 지금 지하벙커서 SI(돼지인플루엔자) 전쟁중"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에 파견돼 인플루엔자 위기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기동(46) 보건복지부 과장.


WHO 파견 박기동 과장

"이제 시작일 뿐, 6개월이상 갈수도"


"WHO(세계보건기구)는 돼지인플루엔자(SI)가 6개월 이상 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HO 본부에 파견돼 인플루엔자 위기 대응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박기동(46) 보건복지부 과장은 28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SI사태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과장은 "멕시코의 불이 꺼지려면 아직 멀었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6개월 갔는데 이번 SI는 그 이상 갈 것으로 WHO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이번 사태는 장기전(長期戰)으로 생각한다"며 "이곳 요원들에게 체력 관리를 잘해서 절대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안 되고, 허둥대지 않고, 상황을 미리 예단하지 말며, 항상 객관적으로 대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SI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자 WHO 본부 지하 벙커에 자리 잡은 '신종 인플루엔자 위기대응 센터'는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곳은 전세계 140여 개 WHO 지역 사무소에서 올라오는 전염병 정보가 실시간으로 모이는 곳으로, SI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지구 사령부'인 셈이다. 의사인 박 과장은 2년 전부터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인플루엔자 발생을 감시하고 즉각적인 방역 대책을 수립하는 일을 맡고 있다.

"SI가 전 지구를 휩쓰는 대유행(pandemic·팬데믹)으로 가느냐"고 묻자 박 과장은 "그 문제로 여기는 초긴장 상태"라며 "낙관도 비관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만 사망자가 나왔고, 미국 환자 거주 지역에서 대규모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전파력이 그렇게 세지 않다는 낙관적인 면인 반면, 멕시코에서 계속 환자가 늘어나고 감염자가 여러 대륙에서 생기는 것은 불안한 조짐이라는 것이다.

WHO의 벙커에는 30여 명의 방역·역학(疫學) 전문가들이 돌아가면서 24시간 긴급 대응 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사스' 파동을 경험했던 각국의 전문가도 불러들이고 있다.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은 모든 대외 일정을 취소하고 제네바에 머물며, 벙커에서 올라오는 전세계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이곳 위기 대응 센터는 '사스' 파동 후 고(故) 이종욱 WHO 사무총장(2006년 작고)이 만들었다. 센터 간판에는 이 총장의 이름이 적혀 있고, 내부에는 초상화도 걸려 있다.

이곳 요원들은 벙커 한쪽 벽 대형 모니터에 '구글 어스(earth)' 세계 지도를 띄워 놓고 SI가 새로이 발생할 때마다 그 지역을 붉게 칠해 파급 경로를 시시각각 주시하고 있다. 또 각국의 환자 발생 현황과 검사 진행 상황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삼성전자 PDP 모니터에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고 박 과장은 전했다. WHO의 전산시스템이 고장 나도, 이곳의 컴퓨터만은 별도로 작동되도록 설계됐다. 그는 "WHO는 치료제 '타미플루'를 500만 명분 확보하고 있다"며 "만약을 대비해 타미플루 제조 특허를 갖고 있는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 등과 생산 라인을 풀가동할지를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는 얘기다.

그는 "감염 잠복기가 1주일인 것을 감안하면 이번 주가 대륙을 넘나드는 '대유행'으로 갈지 1차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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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다윈은 미래다] 2부 <9>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더이상의 인류 진화는 없다" "기계·과학 결합 신인류 나온다"

의학 발전 등 과학기술이 자연선택·돌연변이 등 진화의 매커니즘 제한

미래의 어느 날 지구. 인류는 텔레파시 능력을 갖게 돼 개인들이 서로의 의식을 공유하는 초의식 상태를 형성한다. 새로운 형질을 획득한 우리의 후손들은 육체와 지구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우주의 몇몇 지성체들의 통합된 의식체인 '오버마인드'에 합류한다.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범우주적 종으로 진화한 것이다. 과학소설(SF) 작가 아서 클라크가 '유년기의 종말'에서 내다본 인류의 미래다.

이 같은 전망은 과연 SF의 허튼 상상에 불과한 것일까. 지구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한 인류의 역사는 35억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수백만년 동안 인류의 조상 종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듯이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와 또 다른 종으로, 아니 호모속이 아닌 다른 속으로 분류될 생명체로 진화를 거듭할 것이다. 과연 인간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 유전적 다양성 잃어가는 현대 인류

영국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의 유전학자 스티브 존스는 최근 "인류의 진화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생물의 진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무작위 변화와 돌연변이 그리고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이, 의술이 발전하고 아이를 적게 낳는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더 이상 인간 진화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가 끝났다는 결론까진 아니어도 현대 과학기술문명사회가 인간의 진화적 환경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는 데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표적으로 치명적 유전자에 의한 자연도태 과정은 의술에 의한 도태로 대체되고, 지구촌 전체가 밀접히 연관되면서 인류 전체의 유전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100~200년 전만 해도 다른 인종, 다른 민족 사이에 자녀를 낳을 기회가 드물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을 보는 것은 예사다. 단일민족이라는 이상을 고집스레 주장했던 한국만 해도 국제결혼 비율이 13%를 넘어섰다.

이러한 유전적 교류는 새로운 유전자 풀이 도입되는 것이어서 국지적으로 보면 당장은 유전적 다양성을 높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류 전체의 유전적 다양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말한다.

순수 혈통을 유지하는 고립된 공동체들이 남아나지 않고 전세계 남녀의 교류가 잦아질수록 인류 전체의 유전자가 서로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존스 교수가 말한 '무작위 변이의 감소'는 곧 이런 의미다. 존스 교수는 "모든 인종이 서로 뒤섞여 결국 (하나의) 갈색 인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인간-기계 결합 시대의 도래

과학기술의 발전은 또한 기계와 결합될 인간의 미래를 눈앞에 제시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30년 뒤면 컴퓨터를 접속할 수 있는 인공 두뇌를 통해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작하거나, 신체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대가 열리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공달팽이관을 이식해 청력을 되찾고, 인공관절을 넣어 걸을 수 있게 된 이들처럼 앞으로 인공 뇌가 이식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테오도르 W 버거 교수는 수년 전 쥐의 뇌에 해마 부분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 칩을 심어 거의 정상에 가깝게 기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관문으로, 해마가 손상되면 새롭게 뭔가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옛날 일은 줄줄이 꿰어도 30분 전 밥 먹은 사실은 잊어버리는 치매환자를 떠올리면 인공 해마의 가치는 금세 드러난다. 완치법이 없는 치매환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줄 해마 이식수술을 (안전성만 보장된다면) 권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해마뿐이랴. 불의의 사고로 척수가 끊겨 전신마비가 된 미국 청년 매튜 네이글은 뇌에 브레인게이트라는 칩을 심고, 전극에 컴퓨터를 연결, 생각만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TV를 켜거나 로봇팔을 움직여 물건을 집는다.

브레인게이트 개발자인 브라운대 존 도나휴 교수는 사이버키네틱스 뉴로테크놀로지 시스템스라는 벤처를 창업,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BCI) 상용화 시대를 알리고 있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매튜 네이글은 뇌에 이식된 칩을 컴퓨터에 연결, 생각만으로 로봇팔을 움직이고 TV를 켜고 끈다. 미래에는 인간 능력을 강화하는 데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뇌-컴퓨터 접속은 근본적으로 신경세포끼리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작동하는 뇌의 기능이 컴퓨터의 정보처리과정과 같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는 "뇌와 컴퓨터는 다른 언어를 쓰지만 적절한 통역기만 개발되면 호환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일단 치료 목적으로 도입될 인공뇌 이식은 '슈퍼 인간족'의 탄생이라는 논란을 잉태하고 있다. 뇌가 디지털 정보처리를 거쳐 신체에 장착된 인공물이나 주변의 기계들을 제어하면 빨리 달리고, 힘 세고, 멀리 보는 '600만불의 사나이'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첨단연구기획국(DARPA)은 슈퍼 군인을 만들기 위?이 분야에 엄청난 연구비를 쏟아붓고 있는데 이런 기술이 더 능력있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일반인에게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다.

■ 과학기술에 기반한 신인류의 출현

정재승 교수는 "BCI 기술은 유전되지 않는 특질이므로 진화적인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보는 반면 인간-기계 결합이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과의 닉 보스트롬 교수는 뇌의 영역별 기능이 완전히 규명되고 이를 대체할 기술이 발전하면, 애써 수학이나 외국어를 배울 필요 없이 '계산모듈' '언어모듈' 등을 업로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황을 분석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관리모듈'을 업로드하면 단번에 치밀하고 계획적인 인간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보스트롬은 "생물적 뇌를 가진 현재의 인간은 업로드족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 뻔하고, 업로드족은 자신의 뇌를 복제하는 식으로 자손을 퍼뜨려 미래의 새로운 종으로 자리잡을지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신서사이저 등을 발명한 특허왕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불과 1세기 후면 물리적 신체로부터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보스트롬의 예측과 비슷한 '소프트웨어 기반 뇌'를 가진 인간이 현재 우리와 같은 '뉴런 기반 뇌'를 가진 인간보다 많아지고, 그들은 육체가 필요하면 가상현실이나 나노봇을 통해 필요에 따라 만들면 그뿐이라는 것이다.

인공지능기술만이 아니라 생명공학기술 역시 인류 진화의 운명을 가를 엄청난 잠재력을 품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의대 그레고리 스톡 교수는 "원하는 유전자들을 끼워넣도록 인공 염색체 한두 개를 배아에 삽입함으로써 인간을 재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3쌍의 사람 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보다, 차라리 켜거나 끌 수 있고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는 인공 염색체를 만드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 인류 진화, 그 우연한 필연

오늘날의 윤리적 잣대로 보면 이러한 미래 예측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적용과 보급은 기술이 없던 당시의 판단을 가볍게 뛰어넘곤 한다. 정재승 교수는 "성형수술로 몸값이 몇 배 뛴 스타들의 예를 보라.

처음엔 기형 환자에게 적용되는 의술이었지만 이제는 계급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지 않느냐"며 "뇌 기능을 강화하는 기술도 신뢰성이 높아지면 현재의 가치판단이 어떻든 일반인이 소비하려는 욕구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인지과학협동과정 이정모 교수는 이 같은 변화의 시기를 인간 인식에 대한 새로운 전환기로 규정한다. 그는 "인류는 르네상스와 17세기 계몽시대를 거치며 비로소 하늘과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인식을 갖게 됐다.

이후 다윈 진화론은 인간이 동물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인식을 열어주었다. 이제는 인간이 만든 인공물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가 오고 있고, 인간 존재의 개념을 밑뿌리부터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치 개미와 아카시아나무가 해충을 막아주고 먹이를 얻는 식으로 공진화해왔듯이 인간은 인공물과 공진화하는 미래를 맞게 된다는 전망이다.

지질학적 시간 단위를 넘어 천문학적 시간을 내다본다면 과학기술을 통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것은 인류의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 소행성 충돌, 핵전쟁 등으로 야기될 수 있는 멸종의 위기를 용케 모두 피해간다 하더라도 생명의 근원인 태양의 수명을 연장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청장년기에 다다른 태양은 앞으로 50억년 내에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지구를 삼켜버릴 것이고 인류는 그 전에 살만한 다른 행성계를 찾아나서야 한다. 인류가 단단한 기계적 하드웨어에 유전 정보를 담는 식의 완전한 개조를 겪지 않는다면 길고도 험한 항성간 여행을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쯤 되면 지구의 지적생명체는 우리의 후손이라기엔 민망할 만큼 우리 예상을 벗어나 있으리라. 오래 전 어느 단세포 생물이 인간이라는 후손을 어디 예상했으랴. 다만 호모 사피엔스가 미래 지성체 존재의 토대가 된 과학기술문명을 일으킨 종으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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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일보]

Closed Mines to Undergo Asbestos Inspection







By Bae Ji-sook

Staff Reporter

The Ministry of Environment said Monday that it will examine the density of asbestos in soil, water and elsewhere in villages near 22 closed mines nationwide by April next year.

Environments within four kilometers of the mines will be examined to detect asbestos. The ministry will also conduct health checks on residents and former miners. Places where there used to be asbestos pulverizing facilities are also subject to the examinations. The measures will continue until 2012.

The decision comes as some residents of Hongseong and Boryeon, in South Chungcheong Province, have been diagnosed as suffering from various diseases allegedly linked to inhaling asbestos.

Hongseong Medical Center said last year that 41 residents from five towns in the province with shutdown mines were diagnosed with lung disease since 2000 ― seven of whom were diagnosed with lung cancer, which proved fatal for three of them.

A series of reports claimed that asbestos, the harmful effects of which weren't well-known decades ago, was abundant in the earth, rocks and water in the region and residents weren't warned of possible harm from contamination. They alleged many have suffered from the particle-caused disease without knowing the cause of their symptoms and died.

Environment Minister Lee Maan-ee earlier this year visited the locations and promised to look for ways to help patients. The authorities decided to bring soil from other regions to cover and improve the earth there.

Chungcheong environmental groups have often raised suspicions that more people have been affected by the deadly substance, which the government has designated as a class A carcinogen.

Recently, a series of incidents involving the material ― talcum powder containing asbestos, and toxic blue asbestos detected at the reconstruction site of the former headquarters building of Samsung among others ― have raised public concern.

Cho Han-yong of the Korea Asbestos Environment Association said, ``Japan and some others countries have acknowledged the lethality of asbestos and started compensating those exposed to it unintentionally. The test results should lead to long-awaited compensation and increased awareness.''

Asbestos is known to cause respiratory diseases such as asbestosis leading to lung cancer.






[출처 : 코리아타임스]

Books vs. Comics







By Shin Chul-ho

Long ago, when I was a first grader at an elementary school in my hometown of Cheoron, in Gangwon Province, I was struck by a serious illness.

The symptoms got worse rapidly and couldn't be treated in the small village. My father took me to a big hospital in Seoul, which determined the cause of my illness. Father carried me on his back to the hospital almost every day for more than half a year. One day, the foreign doctor in charge of me allowed my father to take me back to my hometown to be treated at a small clinic there, where I continued to receive treatment for the rest of the year.

I became a second grader without studying for a full year, so I didn't know how to read or calculate. I was completely illiterate in all subjects until the third grade. The only reason I went to school was to play with my classmates.

Then I rose one more grade, and three months passed. My teacher told seven or eight boys and girls, including myself, to remain in the classroom after school. We were all illiterate. The teacher taught us the Korean alphabet and how to pronounce words and, later, sentences. Only after two weeks did I have no problem reading and a little difficulty writing. King Sejong, the inventor of the Korean alphabet, hangeul, seemed really great.

Shortly, I became addicted to comic books because no others were within my reach. My school had a small number in a room but it was always locked. That year, my elder brother came home during summer vacation. He was studying at a high school in Seoul, as my hometown had no high school at the time. He gave me a book titled ``Arabian Nights" he had bought in Seoul. It consisted of about 10 stories shortened for children from ``A Thousand And One Nights." It was the first book I'd read. I was absolutely mesmerized by it.

It goes without saying that reading books, I mean real books, is far more effective for developing our minds than reading comics in terms of so-called ``neuro-plasticity,'' even though comic books contain educational and informative content.

In my elementary school days, I read countless comic books, but I've all but entirely forgotten them. In sharp contrast, all the details of ``Arabian Nights" are still fresh in my memory. Why? Because I used my imagination while reading the book ― while reading comic books didn't require any imagination. Comic book artists unfolded their imaginations on paper instead of my mind. I think comic books can be worthy of being enjoyed ― as soap operas, movies and other forms of entertainment are ― but can also retard the learning process.

I ask my students to read a book in the morning before starting lessons. Most of them take out comic books and biographies of great men and women in world history. I question how helpful these books are in boosting creativity and expanding knowledge.

Dr. Norman Doidge states as follows in his recent book ``The Brain That Changes Itself": ``Mark Rosenzweig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had studied rats in stimulating and non-stimulating environments, and in postmortem exams he found that the brains of the stimulated rats had more neurotransmitters, were heavier and had better blood supply than those from the less stimulating environments. He was one of the first scientists to demonstrate neuro-plasticity by showing that activity could produce change in the structure of the brain."

I sometimes ask my comic book-addicted students, ``Which are more stimulating ― books or comics? But which are more helpful for your study?"

The writer teaches at an elementary school in Gyeonggi Province. He can be reached at heemy123@hanmail.net.






[출처 : 코리아타임스]

BRITAIN EARTH TREMOR











Earth tremor in Cumbia

The British Geological Survey, seismic trace which highlights an earhquake of 3.7 magnitude which centred on Ulverston in Cumbria, north west England on 28 April 2009 and was felt around the surrounding area. Emergency services have said that there has been no initial reports of damage or injuries. EPA/BRITISH GEOLOGICAL SURVEY / HO UK & IRELAND OUT SALES EDITORIAL USE ONLY/NO SALES

<긴급속보 SMS 신청> <포토 매거진> < M-SPOR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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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출처 : EPA연합뉴스]

녹색생활문화 실천, 여성이 앞장선다.







G-Korea 여성실천단『WE Green』출범

여성부는 여성단체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전 국민의 녹색생활문화 실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G-Korea』추진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쳐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한 출발점이 될 WE Green 출범식 및 결의대회인 '여성이 그린 세상, G-Korea' 행사를 여성단체와 함께 개최하고, 이후 지역별로 WE Green 실천결의대회를 개최하여 전국적으로 확산할 계획

여성부(장관 변도윤)는 여성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녹색생활을 국민적 실천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여성이 그린 세상, G-Korea』행사를 4월 30일(목) 오후 3시,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다.

여성부와 "G-Korea 여성협의회"가 공동주최하고, 환경부와 녹색성장위원회의 후원으로 추진되는 이 행사에는 변도윤 여성부장관, 이만의 환경부장관,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여성계 주요인사, 'G-Korea여성협의회' 참여 단체장, 'G-Korea여성실천단(WE Green)' 등 1200 여명이 참석한다.

이 날 행사는 G-Korea를 실천할 WE Green 출범식이 있은 후, 경제회복 및 녹색 성장을 위한 WE Green 실천 결의문이 발표되고, '녹색성장과 여성경제인의 역할'의 주제로 포럼도 진행된다.

또한, WE Green의 실천을 다짐하는 그린 바람 'Green Hope'과 '한반도 녹색지도 완성' 등의 그린 퍼포먼스도 펼쳐지고, 빗물을 이용한 천연 잔디 조성제품,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아기 딸랑이 등의 친환경 유아용품 등 생활 속에서의 저탄소 녹색성장을 도와줄 녹색상품 및 중소기업 친환경 우수상품 전시도 함께 이루어진다.

한편, 이 날 행사에는 G-Korea를 실천할 여성 1,000여 명이 참가하여 WE Green 출범식을 가지고 전국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WE Green은 여성단체 회원 및 아파트 부녀회, 학교 학부모회 모임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 'G-Korea 여성실천단으로, 'CO2 가계부 작성 운동' 등 녹색생활 실천과제를 수행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 WE Green(위그린) 이란?

WE는 W(여성-Woman, 함께-With)와 E(환경-Environment, 지구-Earth]의 결합어로 여성과 시민사회가 함께(WE) 생활 속의 녹색성장(Green)을 이끌어 나간다는 의미

이들은 효율적인 활동을 위해 리더회원인 'WE Green 매니저'와 활동회원인 'WE Green 서포터스'로 구분하여 활동하게 되며, 이날 출범식을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을 펴나갈 예정이다.

이번에 여성부와 공동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G-Korea 여성협의회'는 전국의 여성단체, 소비자?경제단체가 뜻을 모아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G-Korea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구성되었다.

G-Korea는 녹색생활문화 확산(Green Life), 여성 일자리 창출(Getting Job), 희망 나눔(Giving Hope)을 통해 만들어가는 희망한국을 의미한다.

변도윤 여성부 장관은 "여성부와 여성계가 하나로 뜻을 모아 '녹색생활 문화혁명'을 이끌어 내는 의미 있는 행사"라며,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 하나가 모여 커다란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성부는 이날 행사에 이어 지역별로 'WE Green 출범식 및 릴레이 실천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연중 캠페인 추진을 통해 전국적인 녹색생활 실천 문화 확산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출처 : 여성부

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홍보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출처 : 연합뉴스 보도자료]

Monday, April 27, 2009

송파구, 환경영화제 연중 개최





김영순 송파구청장


송파구(구청장 김영순)가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기 위한 행사들을 잇달아 개최해 눈길을 끌고 있다.

◆환경을 가슴으로 느끼는 시간, '환경영화제'

송파구는 28일 마천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지역내 학교와 석촌호수 등에서 '환경영화제'를 연중 개최한다.

자라나는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환경파괴와 기후 변화를 다룬 영화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고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4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 번씩 학교와 야외를 오가며 진행된다. 4~5월, 9~12월은 지역내 학교에서, 6~8월엔 석촌호수 등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게 된다.

특히 환경의 날인 6월 4일에는 석촌호수 수변무대에서 2008년 환경영화제 개막작인 '지구(Earth)'를 상영할 예정이다.

장동건의 내레이션으로도 유명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지구의 탄생과 광대한 지구여행을 통해 그 안에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삶을 다룬 영화다.

장대한 영상과 아름다운 석촌호수가 어우러져 초여름 저녁의 멋진 추억을 안겨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28일에는 환경영화제의 첫 행사로 마천초등학교 과학실에서 학생 70여명을 대상으로 환경 관련 단편모음영화를 상영했다.

행사는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내용의 단편영화 상영과 영화에 대한 해설로 어린이들의 호응속에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환경도 살리고 이웃도 돕고 '환경사랑 나눔장터'

오는 30일에는 송파구 주부환경협의회(회장 정희정) 주관으로 '환경사랑 나눔장터'가 개최된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와 경기불황까지 겹쳐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재활용을 촉진해 환경도 보호하고 수익금의 일부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해 이웃사랑도 실천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다.

주부환경협의회와 구립어린이집 연합회 그리고 삼전동종합사회복지관 등에서 판매자들에게 물품을 수거받아 판매하게 되는데 수익금의 일부는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공무원이나 일반 주민의 기증품 판매액은 전액 성금으로 기탁된다.

나눔장터 행사는 오는 3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잠실역(2호선) 롯데백화점 지하광장에서 진행된다. 문의 환경과(☎410-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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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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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시아경제]

여성부, 녹색생활문화 캠페인 시동







여성단체와 '지 코리아(G-Korea)' 운동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여성이 앞장서 녹색 생활 문화를 실천하기 위한 운동이 시작된다.

여성부는 여성이 주도하는 친환경 생활 문화의 실천과 확산을 위해 여성단체들과 협력해 '지-코리아(G-Korea)' 캠페인을 펼쳐나간다고 28일 밝혔다.

캠페인 명칭 '지-코리아'는 녹색생활문화 확산(Green Life), 여성 일자리창출(Getting Job), 희망 나눔(Giving Hope)을 통해 만들어가는 희망 한국을 의미한다.

여성부는 30일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여성이 그린 세상, G-Korea'를 개최해 캠페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대한어머니회중앙연합회 등 69개 여성단체의 회원과 아파트 부녀회 등으로 구성된 여성실천단 '위 그린(WE Green)' 출범식에 이어 '위 그린' 실천 결의문 발표, '녹색성장과 여성경제인의 역할'을 주제로 한 포럼 등이 진행된다.

여성실천단 '위 그린(WE Green)'은 여성(Woman)과 함께(With) 환경(Environment)과 지구(Earth)를 생각한다는 뜻의 결합어로 여성과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생활 속의 녹색 성장을 이끌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 그린은 친환경 제품 구입, 물과 전기 절약, 1회용품 사용 자제, 적정 실내온도 유지, 대중교통 이용, 정시퇴근제 실천 등의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G-코리아 여성협의회'가 공동 주최하고, 환경부와 녹색성장위원회가 후원하는 이 행사에는 변도윤 여성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김형국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 등 1천20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 후반에는 '한반도 녹색지도 완성' 등의 퍼포먼스가 곁들여지고, 녹색상품과 중소기업 친환경상품도 함께 전시된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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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Andrew Sheng] The fable of the monkeys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kingdom that was famous for its banana production. The bananas were so good and tasty that they were even used for money.

One day, a monkey came and made an offer to look after the bananas. The people said, "But we never let monkeys look after bananas!" But this monkey was different. He said, "I have got a physics degree Summa Cum Laude from Bantech, I got an MBA from Chicaton, I have worked for Simian and Simians, the best firm in the business and look, I wear an Armani suit." People thought - "He is right, we should not be prejudiced." So they allowed him to look after a small plantation.

This monkey was very able and clever and under his charge, the plantation prospered. He noticed that bananas ripen very fast and can rot easily, and there were good bananas and bad bananas. The best bananas were gold in colour and were very valuable. Some were hard and not easy to sell. This non-standardization of bananas was a great loss to the plantation and there was no liquidity in the market.

So this clever monkey called Ah Yuen invented the first derivative, using one banana leaf (called one Ye) to represent a bunch of 10 bananas. And people thought, how clever. We don`t have to carry bananas - banana leaves that are so light and so convenient. Anyway, whenever we need bananas, we just exchange Ye`s with Ah Yuen, who is always willing to buy and sell bananas in exchange. After this, Ah Yuen became the richest person in the country and established a banana bank called Yebank! Yebank`s slogan was "Ye`s we have bananas."

Ah Yuen was so entrepreneurial that he expanded through mergers and acquisitions, first through an IPO and then issuing banana shares to acquire more plantations. Everyone was happy, because they were now trading Ye`s instead of bananas and they felt they were growing richer and richer.

One day, Ah Yuen had a brain wave. Instead of trading one leaf for 10 good bananas, why couldn`t he package the good and bad bananas into a super leaf called Banana Debt Obligation or BanDO. He persuaded a Banana Rating Agency to give AAA rating for these BanDOs and persuaded an insurance company called BIG (Banana Insurance Group) to insure these BanDOs with a special leaf called BanDS or Banana Decay Swap. If the banana decays, you swap for another banana. For his success, he got a 20 percent bonus and also options to more future profits.

One day, the King sent his Grand Vizier to check on the market. Ah Yuen gave a dazzling powerpoint presentation on how the whole market was self-regulating. He showed how he had created a huge market on BanDOs with complete swap and futures markets based on what was formerly a primitive market of real bananas. The country was prospering and everyone seemed happy. The Grand Vizier did not want to show everyone that he did not understand what the BanDOs and BanDS were and as long as everyone looked happy, he did not ask any more questions. After all, they were all rated AAA. Moreover, his nephew worked with YeBank.

The market in BanDOs was so successful that some asset managers claimed that they would sell their mother-in-laws first before they sold BanDOs. One clever asset manager even created a PonBan scheme, whereby he guaranteed steady high returns because he could hedge everything in the BanDO market through options, hence the name Put On Bananas scheme. His sales principle was simple - if you have to ask questions on how the scheme worked, you can`t afford it.

One day there was a banana blight and some people decided to cash in a few BanDOs. A few bold hedge fund managers even had the temerity to short the BanDO market, causing market nervousness. So, to stop the panic, the Banana Exchange Commission decided that short-selling should be temporarily banned in order to create orderly markets. People were advised not to listen to vicious market rumors. However, because the premium on BanDS had gone up, the Banana Rating Agency had no alternative except to downgrade BanDOs from AAA to BBB or junk status. Overnight the market collapsed and YeBank had a bank run causing it to be nationalized. The investigators found lots of leafs, but no bananas in the bank.

There was a Royal Commission to investigate the collapse. The first question to Ah Yuen was: What happened to the bananas? Well, he replied, "I ate a bit as I was entitled to my bonuses and options. I paid the lawyers, the distributors and the Banana Rating Agency quite a lot of bananas. I gave you all a banana split called BanDOs because you wanted more bananas. Everyone had a good time, so why blame me? Don`t forget that I am still entitled to my retention bonus under my employment contract."

After days of hearings, the Royal Commission reached two basic conclusions: Never trust monkeys with bananas; and a monkey in an Armani suit is still a monkey.

Andrew Sheng is an adjunct professor at Universiti Malaya, Kuala Lumpur, and Tsinghua University, Beijing. He has served as adviser and chief economist to Bank Negara, deputy chief executive of the Hong Kong Monetary Authority and chairman of the Hong Kong Securities and Futures Commission. - Ed.

(Asia News Network)






[출처 : 코리아헤럴드]

A Way Out of Tibet's Morass







By Robert Barnett

Project Syndicate

NEW YORK ― China has survived the 50th anniversary of the failed uprising by Tibetans against Chinese rule in 1959 without major protests.

But, to keep Tibetans off the streets, China's government had to saturate the entire Tibetan plateau with troops and secretly detain in unmarked jails hundreds of people for ``legal education."

Those moves suggest that Tibet has become an increasingly serious concern for China's rulers, one that they have not yet found ways to handle without damaging their standing in Tibet and around the world.

A year ago, Chinese and Western intellectuals competed in dismissing popular interest in Tibet as a childlike confusion with the imaginary Shangri-la of the 1937 film ``Lost Horizon."

But after more than 150 protests in Tibet against Chinese rule over the past 12 months, concerns about the area seem anything but fanciful. Indeed, Tibet could soon replace Taiwan as a factor in regional stability and an important issue in international relations.

The areas populated by Tibetans cover a quarter of China; to have such a large part of the country's territory under military control and cut off from the outside world weakens the Communist Party's claims to legitimacy and world power status.

Last year's protests were the largest and most widespread in Tibet for decades. Participants included nomads, farmers, and students, who in theory should have been the most grateful to China for modernizing Tibet's economy.

Many carried the forbidden Tibetan national flag, suggesting that they think of Tibet as a separate country in the past, and in about 20 incidents government offices were burned down.

In one case, there were even attacks on Chinese migrants, leading to 18 deaths. It is hard not to see these events as a challenge to China's rule.

The government's reaction was to blame the problem on outside instigation. It sent in more troops, hid details of protestors' deaths, gave a life sentence to an AIDS educator who had copied illegal CDs from India, and for months banned foreigners and journalists from the Tibetan plateau.

In November, Chinese officials, live on national TV, ridiculed Tibetan exiles' proposals for negotiation. They canceled a European summit because of a meeting between French President Nicolas Sarkozy and the Dalai Lama, and regularly imply that Tibetans are terrorists.

On March 28, Tibetans in Lhasa had to celebrate ``Serf Emancipation Day" to endorse China's explanation for its takeover 50 years ago.

But such class-struggle terminology reminds people of the Cultural Revolution and, since such language would be unimaginable in inland China today, only makes Tibet seem more separate.

Although both sides claim to be ready for dialogue, they are talking at cross-purposes: the exiles say that talks must be based on their autonomy proposals, while China says that it will discuss only the Dalai Lama's ``personal status" ― where he would live in Beijing should he return to China.

Visceral sparring matches are continuing, with the Dalai Lama recently describing Tibetans' lives under China as a ``hell on earth." He was almost certainly referring to life during the Maoist years rather than the present, but his remarks enabled China to issue more media attacks and raise the political temperature further.

Western governments have been accused of interference, but it is unlikely that any want to derail their relations with China, especially during an economic crisis.

Last October, British Foreign Minister David Miliband was so anxious to maintain Chinese goodwill that he came close to denouncing his predecessors' recognition of Tibet's autonomy 100 years ago.

But foreign concerns about the status of China's mandate in Tibet are understandable: Tibet is the strategic high ground between the two most important nuclear powers in Asia. Good governance on the plateau is good for everyone.

China could help to lessen growing tensions by recognizing these concerns as reasonable. The Dalai Lama could cut down on foreign meetings and acknowledge that, despite China's general emasculation of intellectual and religious life in Tibet, some aspects of Tibetan culture (like modern art, film and literature) are relatively healthy.

Western observers could accept the exiles' assurances that their proposals on autonomy are negotiable and not bottom-line demands, rather than damning them before talks start.

All sides would gain by paying attention to two Tibetan officials in China who dared to speak out last month. A retired prefectural governor from Kardze told the Singapore paper Zaobao that ``the government should have more trust in its people, particularly the Tibetan monks," and the current Tibet governor admitted that some protesters last year ``weren't satisfied with our policies," rather than calling them enemies of the state, the first official concession from within China that some of its policies might be connected to the recent protests.

The party has so far been following a more conventional strategy: last week it sent a delegation of officials to the U.S. (the first ever sent, it said, to have been composed solely of Tibetans ― a fact that one might expect them to have been embarrassed to admit) and had its leader, Shingtsa Tenzin Choedak, tell journalists that Tibetans enjoy freedom of religion.

As anyone who has worked in Tibet recently knows well, this was an inexactitude: since at least 1996, all Tibetans who work for the government and all Tibetan students in Tibet have been forbidden any Buddhist practice, even though it is illegal under Chinese law to stop people from practicing an official religion.

China's government could improve the situation overnight by sacking the officials responsible for such illegal policies, and by apologizing to Tibetans for having overlooked such abuses for 15 years.

And it could start reassessing its Tibetan policies instead of increasing controls and allegations. Until then, China's quest for international respect is set to remain elusive and Tibet is likely to stay on the world's agenda.

Robert Barnett is director of the Modern Tibetan Studies Program, Columbia University. For more stories, visit Project Syndicate (www.project-syndicate.org).






[출처 : 코리아타임스]

New Take on 'Peer Gynt'





A poster of Norwegian playwright Henrik Ibsen’s classic “Peer Gynt,” presented by director Yang Jung-ung of Yohangza Company at LG Arts Center from May 9 to 16


By Chung Ah-young

Staff Reporter

Theater fans will be able to see a unique modern take on Norwegian playwright Henrik Ibsen's classic ``Peer Gynt,'' presented by director Yang Jung-ung of Yohangza Company.

The Korean adaptation of the epic masterpiece is known to be difficult to stage due to its rapid and frequent scene changes and extensive dialogue.

The original play consists of five acts and runs for some six to seven hours. However, Yang will condense a new production of the spectacle ― in his magical scenic style ― into a two-and-a-half hour work.

The title character is a dreamer and a liar with a penchant for womanizing who, after being expelled from his hometown, sets off on an incredible journey that takes him all the way from Norway to Africa and eventually back home.

In the upcoming work, Yang will put more emphasis on each character, rather than the Norwegian background in the original version. The play will focus on more universal themes rather than Norwegian myths.

``Ibsen was Norwegian and wrote the work in the 1860s, but I think there's something beyond time and space here. I'm trying to make a modern `Peer Gynt' without losing the essence of the original,'' he said.

The play will be staged in a simple and minimal set in which a large-sized mirror will be installed in the stage wall and the floor will be covered with earth.

``Peer Gynt'' is a new challenge for Yang, highly acclaimed for his new re-interpretation of Shakespearean works such as ``A Midsummer Night's Dream.''

``I've chosen this work because the adventurousness in the play is suitable for the philosophy of our theater company, which has no fear of attempting a new venture,'' Yang said.

Ibsen wrote ``Peer Gynt'' in 1867 but didn't intend for it to be performed on stage. Instead, he envisioned his work as a poetic fantasy to be read. However, it was quickly recognized as a masterwork of Scandinavian literature, and Ibsen adapted his work for stage in 1876.

Yang was born in Seoul in 1968 and studied creative writing at Seoul Institute of Arts. In 1997, he set up Yohangza Theatre Company, which has traveled and performed not only in Edinburgh, Scotland, and The Barbican in London, England, but also in Poland, Colombia, Ecuador, China and Japan, to name just a few.

The company's work is an exciting mix of past and present through a reworking of Korean identity, spirit and style, infused with contemporary performance elements, and won the prestigious Best Production at the Cairo International Festival of Experimental Theatre in September 2003, as well as numerous local awards. Its performances have struck a chord with audiences, both Korean and international.

The play will go on stage at LG Arts Center from May 9 to 16. Tickets cost 40,000 won. For more information, call (02) 2005-0114.






[출처 : 코리아타임스]

SRI LANKA UN











Under Secretary General for Humanitarian Affairs and UN Emergency Relief Coordinator John Holmes visits Sri Lanka

Under-Secretary-General for Humanitarian Affairs and United Nations Emergency Relief Coordinator John Holmes during a photo opportunity at the Foreign Ministry in Colombo 27 April 2009. Sir John Holmes is on a three day visit to the island nation to discuss relief and safety measures for the thousands of civilians rescued by the military from the conflict zone in the north-east of the country. Held hostage by retreating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LTTE) the more than 100,000 civilians were able to enter government controlled areas 20 April after the military breached one of the last earth bunds put up by the separatists to thwart their advance. The civilian exodus has raised international concern and demands for a ceasefire. Today, the Sri Lankan government issued a statement saying that combat operations have ceased and that only civilian rescue operations were ongoing. It has instructed the military to end the use of heavy caliber guns, combat aircraft and aerial weapons which could cause civilian causalities, the statement added. EPA/M.A.PUSHPA KUM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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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EPA연합뉴스]